[정신건강 에세이] X 레이 발견

‘자연은 그의 놀라운 현상을 가끔 단순한 형태로 표현한다. 오직 깊은 지식을 갖추고 예민한 판단과 강한 연구심을 지닌 사람들의 투철한 실험에 의해서만 발견되게 한다.’ 독일의 뷔르츠부르그 대학 물리학 정교수와 과장으로 부임한 빌헬름 콘라드 뢴트겐(Wilhelm Conrad Roentgen,1845-1923) 박사의 취임사의 일부분이다. 이것이 자신에게 해당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하녀로부터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다는 전갈이 실험실로 여러 번 왔다. 몇 수저 뜨는 둥 마는 둥 급하게 식사를 마친 후 뢴트겐 박사는 즉시 실험실로 돌아갔다.

1895년 11월 8일이었다. 그는 수개월간 음극광선에 대해 연구를 계속해왔다. 연구에 몰두하다 보니까 늙은 수위가 실험실 문을 두드리고 방안에 들어왔다가 나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몰랐다. 진공상태인 음극관에서 발생하는 고주파 전파로 공기에서 몇 센티미터쯤 나가는 광선이다. 그는 실험실의 불을 완전소등하고 음극관에서 불빛이 새어나가기 않도록 검은 종이판으로 관을 전부 가렸으며 길거리 개스 등의 불빛을 완전히 차단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책상 위에 있는 종이 한 장위에 불빛이 반짝거리는 것을 목도했다. 그는 종이에서 빛이 나는지 의심했다. 또 창밖에서 새어 들어온 광선이거나 변압기에서 튀어나온 별똥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보았다. 음극광선은 아님이 분명했다. 음극광선은 그 거리가 짧아 책상 위에 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광선은 형광판 위에 특징적으로 초록색 빛을 내며 반짝거렸다. 박사는 색맹이어서 초록색 대신 그냥 반짝이는 불빛만 보았다. 결국 그는 음극관에서는 음극광선 말고도 더 멀리 도달하는 새로운 광선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 발견은 우연이었지만 의학사에 새로운 전기가 되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그 광선은 직진했으며 검은 종이는 물론 트럼프 카드나 두꺼운 책을 관통했다. 그 성격을 잘 몰라서 그는 이 광선을 X 광선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 광선의 관통 성질을 연구하기 위해 여러 가지 광물을 시험으로 사용했다. 납을 놓아 보니 광선이 납은 통과하지 못했다. 놀라운 발견은 이 납을 광선 앞에 고정시키기 위해 손가락으로 잡았는데 놀랍게도 희미한 손뼈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뢴트겐 박사는 X 광선도 음극광과 마찬가지로 쪼이면 사진 건판에 흑색으로 나오는지 실험했다. 광선과 건판 사이에 물체를 놓으면 그 물체의 성질에 따라 이 광선이 관통하는 정도가 다르고 이에 따라 농도가 다르게 나타남을 확인했다. 잠겨있는 나무상자를 찍었더니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이 감별되었다.

그는 이어 사냥총을 X 광선으로 찍어 보았다. 사냥총 내부에 균열이 있음을 알아내었다. 대상물을 부수지 않고도 안에 있는 결점을 찾아낸 첫 번째 발견이었다.

다음으로 그는 부인의 왼쪽 손을 찍었더니 뼈와 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그는 부인의 손을 가만히 들게 하고 약 15분간 X 광선에 노출했는데 현재 기준으로 보면 위험한 과다 노출이었다. 이 사진을 본 부인은 자기 손이 죽고 썩어서 뼈만 남은 상태라면서 불쾌해했다.

1899년부터 의사들은 암이나 결핵, 여러 종류의 염증을 치료할 목적으로 X 광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일정하지 않았고 많은 의사들과 환자들은 방사선이 유발한 화상으로 인해 고생했다.

뢴트겐 박사는 X 광선을 발견한 공으로 인해 빌헬름 2세에 의해 제국 최고의 영예인 프로이센 왕관 훈장을 받았으며 X 광선은 그의 이름을 따라 뢴트겐 광선으로 불리게 되었다.

1901년 노벨상이 제정되자 뢴트겐 박사는 사상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때 받을 상금은 모두 가난한 학생들이 안심하고 공부하기 위해 뷔르츠베르그 대학 물리학 교실에 보냈다.

뢴트겐 광선이 발견된 지 이미 130년이 지났다. 그 사이 이 광선을 등장으로 인해 의학계에는 광선을 이용해 진단하는 진단 방사선과와 암세포 제거를 전담하는 치료 방사선과로 나뉘어 전문 과목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