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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오 기자의[모던 클래식 읽기]

[밴쿠버 중앙일보] 기사입력 2008/06/25 14:24

네이티브 선((Native Son)

리차드 라이트(Richard Wright)지음, 하퍼(Harper Perennial Modern Classics)출판사, 5백4쪽

미국 인종차별 통렬하게 고발
평론가 “이 작품 후 미국 문화는 영원히 변했다"극찬도

미국의 문학 평론가인 어빙 하우는 “네이티브 선(Native Son)이 세상에 나오던 날 미국의 문화는 영원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드러낼 수 없었던, 애써 드러내려 하지 않았던 미국의 부끄러움, 두려움, 무서움, 증오가 이 작품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흑인 작가 리차드 라이트(Richard Wright)의 1940년 작품 ‘네이티브 선’은 미국의 흑백 인종차별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센세이셔널한 작품이다.
라이트 이전에 어떤 작가도-백인이든 흑인이든-미국 사회의 치부를 라이트처럼 감히 도발적으로, 폭력적으로 그려내지는 못했다.


작품은 1930년대 시카고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20살의 흑인 청년 비거 토마스(Bigger Thomas)는 흑인 집단 거주지역 사우스 사이드에 있는 방 하나의 렌트 아파트에서 어머니, 남동생,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가족들은 빈곤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나 자신은 그들을 위해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가족들을 미워할 뿐이다.
글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교육만 받은 비거는 백인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 어떤 희망도 갖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낸다.
비거는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고(helpless) 희망도 없는(hopeless) 세상에서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벽에 갇혀 있는 것이다.


비거는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 건물주인 백인 자본가 헨리 달튼 집에서 일하기 위해 달튼의 집을 방문해야 하는 날 달튼의 집을 방문하기 전 친구와 영화관을 찾게 되고 영화 상영에 앞서 본 뉴스에서 달튼의 딸인 메리를 보게 된다.


메리는 부유한 백인 가정 출신임에도 공산주의에 빠져 있는 여대생이다.
당시 미국 사회는 공산주의자들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


비거는 백인들의 생활을 접하고 싶다는 생각과 가족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달튼 집을 방문하고 운전수로 고용된다.
비거는 운전수로 고용되던 날 저녁 메리의 요구에 따라 메리를 공산주의자들의 모임에 데려다 준다.
비거는 이곳에서 공산주의자인 메리의 남자 친구 잰 얼론을 만난다.


잰과 메리는 여느 백인들과는 달리 흑인인 비거에 친절함을 베풀게 된다.
비거는 이들의 친절에 혼란과 혐오감을 느끼지만 함께 술을 마시자는 요구에 할 수 없이 술을 마시게 된다.


술을 함께 마신 뒤 잰은 떠나지만 비거는 만취된 메리를 새벽에 집으로 데려간다.
메리의 방 침대에 메리를 눕힌 순간 장님인 메리의 어머니가 메리의 방안으로 들어오고 자신이 메리의 방안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질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감을 느낀 비거는 메리의 얼굴을 베개로 덮게 된다.


메리가 자는 것으로 생각한 메리의 어머니는 방을 나가지만 메리는 이미 베개 때문에 질식사한 뒤였다.
발각될 것을 두려워한 비거는 메리의 머리를 절단하고 시체를 화로에 집어 넣어 태우게 된다.
비거는 공산주의자인 잰에게 뒤집어 씌우기 위해 거짓말을 하게 되고 유괴 사건으로 가장하기 위해 몸 값을 요구하는 편지도 달튼에게 보낸다.


그러나 메리의 실종을 알게 된 기자들이 달튼의 집에 몰려들게 되고 결국 한 기자에 의해 화로 속에서 타다 남은 메리의 뼈와 귀걸이가 발견된다.


비거는 달튼의 집을 탈출해 여자친구인 베시와 함께 도시의 빈 건물로 도주하게 된다.
베시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 놓은 비거는 도주하는데 거추장스러운 베시마저 살해하고 도피를 계속한다.


도시를 수색하던 경찰과 민병대는 점점 포위망을 좁혀오고 비거는 결국 체포되고 만다.
비거에게 씌어진 혐의는 강간과 살해. 흑인이 백인 여성을 살해한 것도 용납될 수 없는 것이지만 강간은 더더욱 용서될 수 없는 범죄였다.


비거가 메리를 강간하지 않았지만 경찰은 비거가 메리를 태운 것이 강간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것으로 단정한 것이다.
언론 또한 자극적인 기사로 비거의 살인과 강간 혐의를 다루게 되고 백인 사회의 분노는 절정에 다다르게 된다.


작품은 비거가 공포 속에 살인을 저지르는 첫 장(Fear)과 살인이 발각돼 도피하는 두 번째 장(Flight), 그리고 비거의 운명을 결정하는 재판 과정이 주를 이룬 3장(Fate)로 구성돼 있다.


작가는 제 3장에서 비거를 변호하기 위해 등장시킨 맥스 변호사의 입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잰의 친구이기도 한 공산주의자 변호사는 변론을 통해 “(흑인인)비거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궁지로 몰릴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맥스 변호사는 “미국의 선조들은 억압을 피해 신천지에 도착했으나 스스로가 흑인들을 노예로 만들어 억압했다”며 “백인들이 비거의 처형을 요구하며 분노하는 것은 죄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 그들 증오 속에도 공포감이 들어 있다”고 지적한다.


맥스 변호사는 “비거가 왜 사람을 죽였는지를 사회가 알지 못한 채 비거를 전기의자에 보낼 경우 사회는 영원히 또 다른 살인을 보게 될 것”이라고 강변한다.


스스로도 차별을 받으며 자란 라이트는 이 작품을 통해 미국 사회가 뿌리 깊이 박혀있는 인종 차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잠재된 증오와 공포, 그리고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인 비거가 무슨 심오한 계급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수 백 년간 이어온 인종차별의 역사에서 탄생한 보잘것없는 흑인 젊은이일 뿐이다.
그 역사는 너무 오랫동안 흑인들의 피 속에 흘렀다.
탈출해야 한다는 의식은 없다.
무기력과 무희망만 존재할 뿐이다.


작가가 사회주의에 호감을 보이고 있다.
잰은 재판에서“니그로에게도 사회적 평등이 존재하는가”라는 검사의 질문에 “모든 인종이 평등하다”고 답한다.


또 맥스 변호사는 달튼이 흑인들을 위해 자선 기금을 내면서도 흑인들을 위해 렌트비를 내리지 않는 것을 비난하며 “흑인사회를 위한다고 탁구대 몇 대를 기증하는 것은 흑인들을 위하는 것이 아닌, 순진할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기도 한다.


하얀 것이 깨끗하고 아름다운가가? 작품에서는 하얀 눈이 거침없이 쏟아져 내린다.
비거는 하얀 눈 쌓인 시카고 도시에 갇혀 도피를 하지 못하고 버려진 건물을 전전한다.


‘이방인’의 뫼르소는 태양 때문에 우연하게 아랍인을 살해하고 감옥 속에서 자신을 찾아간다.
‘네이티브 선’의 비거는 공포 때문에 우연하게 메리를 살해하고 감옥 속에서 자신을 찾지 못하고 헤맨다.
그것은 바로 증오와 공포와 부끄러움의 뿌리깊음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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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라이트'는...

1908년 미시시피 록시에서 태어났다.
‘네이티브 선’과 자서전 격인 ‘블랙 보이(Black boy)’가 대표작이다.
모두 6권의 소설과 두 권의 단편집,다수의 비평집을 내 놓았다.


‘네이티브 선’과 ‘블랙 보이’를 통해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작가 중 한명으로 부상했다.
‘네이티브 선’은 발간 즉시 25만부가 팔리는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초기에 공산주의와 실존주의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사실주의 기법을 사용했다.

1960년 파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김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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