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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이의 ‘스물한 살 비망록(備忘錄)’

[밴쿠버 중앙일보] 기사입력 2008/06/27 08:50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워’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라자냐 냄새, 기다란 행렬로 줄을 서있는 사람들, 어디서나 들리는 시끌벅적한 소리. 매주 월요일 마다 볼수 있던 익숙한 광경이었다.
내 삶에 잊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풍경이기도 하다.
깜깜한 앞길에 조그마한 불빛이 되어주었다.


그 가느다란 불빛을 쫓으며 한걸음씩 걸어가게 되었다.

한인 학생회의 임원이 된 직후 맡은 소임이 있었다.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소모임을 만드는 일이였다.
막내로써 기합이 잔뜩 들어간 채 많은 계획들을 세웠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현실의 벽에 부딪혀 무너지곤 했었다.
이 계획도 취소, 저 계획도 잠시 보류. 좌절할 때마다 많은 선배님들이 격려해주곤 했었다.


그러던 도중 학생들이 주기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봉사활동 단체를 만들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지장에 붓으로 하나 둘씩 칠해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사회단체의 사람들을 만나는 일, 한인 학생들을 끌어 모으는 일 등 지금 생각해 보면 어설프기 그지 없었다.
그럴 때마다 늘 도움의 손길과 넒은 마음을 가진 학생들의 열정이 지탱해 주었다.
한인 학생회에’ HUG(Helping Understanding Giving)’라는 봉사활동 단체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이름을 정하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 비로소 주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다.
UGM(Union Gospel Mission)이라는 단체가 기회를 제공했다.
두 그룹으로 나누어 매주 2회씩 다운타운에 갔었다.
우리들은 주로 홈리스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때까지도 이 일이 내 삶을 새로운 길로 데려다 줄 준 모르고 있었다.


그곳은 늘 여러 사람들이 붐빈다.
몇시간 전부터 바깥까지 길게 늘어진 줄을 볼 수 있다.
모두 선착순에 포함되려고 오래 전부터 기다린다.
두 번에 걸쳐서 약 150명에게 식사를 제공할 수 있다.


식사는 빵 한조각, 밥, 야채와 콩 그리고 고기가 나온다.
후식은 주로 스타벅스에서 파는 과자들이 나온다.
테이블 세팅을 할 때마다 박스에 이리저리 쌓여져 있는 과자들을 보곤 했었다.
“이것들을 우리들은 몇 달러씩 내고 분위기 잡으며 먹곤하지?” 이런 생각에 웃던 기억이 난다.


가끔은 술 냄새가 진동하는 아저씨도 있었다.
마약에 눈의 초점을 잃은 아주머니도 있었다.
처음에는 낯설고. 안됐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이런 이들을 돕는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기도 했었다.

시간이 흐른 후 이 ‘보람’은 내 만족에 스스로 취한 기분이란걸 알게 되었다.
나 스스로 그 사람들이 불쌍하길 바랬던것 같다.
나는 그 보다 나은 상황에 있는 사람이고 싶어했다.
나의 만족을 위해서.
밥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냥 나와 같았다.
조그만것에 행복을 느끼고 가끔은 아퍼하기도 하는 나. 아니 어쩜 나보다 행복을 발견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분들의 미소속엔 희망이 자리잡고 있었다.
밥을 기다리면서도, 따뜻이 몸을 맡길 곳을 찾으면서도.

<행복이란 보물은 가까운 곳에...>

그들을 불쌍히 보려고 하던 내가 오히려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가? 누구에게나 희망과 기쁨은 함께 한다.
어디에서든 사람은 희망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우리를 진정 사람답게 만들어 준다.
어떤 노래의 가사처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이는 옛날에 축구선수였는데 병 때문에 다리를 못쓴다고 했다.
토론토에서 의사였다고 하시는 분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며 활짝 웃는다.
마치 행복했던 일들을 떠올리듯. 어느 새 나도 이 이야기들을 믿고 빠져든다.


우리는 그들에게 작은 시간을 주었지만 그들은 내게 사람에 대하여 셀 수 없는 큰 가르침을 전해줬다.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말로, 가끔은 행동으로 직접 보여 주었다.


주위에 넘쳐나는 행복이란 보물을 하나둘씩 발견하시는 그들을 보며 아주 조그마한 것부터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길 소망해 본다.


물론 그들의 이면에 대해 전혀 모르고 밖에서의 삶을 전혀 알수 없다.
어쩜 쉽게 말하듯 마약에 의지하여 자신의 삶을 보낼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내가 짧은 순간에 보았던걸 전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맡았던 진한 사람 냄새를 말하고 있다.


그분들은 내게 무엇을 하냐고 물어 본다.
나는 드라마를 공부하는 학생이라 말했더니 반가워 하며 자신이 어렸을 때 봤던 세익스피어나 TV 드라마들을 얘기 했다.
이때 내가 걸어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볼 수 있게 됐다.


세상에 수많은 연극들은 소외받는 계층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밴 존슨의 희극 ‘발폰(Valpone)’은 부자들을 비꼰다.
입센의 ‘인형의 집’은 여성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 한다.
마치 사회의 정의를 구현하려고 하듯 도전적 메시지를 전한다.


한 가지 아이러니 한 것이 있다.
정작 이들이 이야기 하는 소외계층은 이런 연극을 접할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이 연극들은 극장에 돈을 지불할 수 있는 몇몇 계층만이 관람할 수 있다.
겉은 정의를 애기하고자 하지만 결국 그 속은 이 사회구조의 종속물인 것뿐이다.


“표현”은 사람을 회복시키는 힘이 있다.
표현을 하며 때론 관람하며 사람은 자유로움 느낀다.
우리는 노래도,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시험을 보는것도 이런 표현중 하나일 수 있다.
표현은 사람으로써 할 수 있는 귀한 선물중 하나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홈리스들을 자주 본다.
돈을 달라고 소리를 치거나 이상한 말로 중얼거린다.
우리들은 이것을 “표현”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저 “위험한 사람들”로 만 본다.


이들이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가진 이야기와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이분들이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놀이판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내가 보았던 그들의 희망을 사람들도 볼 수 있도록.

김은총(UBC 한인학생회 부회장, xkorea8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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