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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걱정하지 말라니!

아침 출근길. 폐쇄병동 안에 있는 사무실까지 가려면 빌딩 문부터 시작해서 열쇠로 문을 열 번은 열어야 한다. 몸으로 밀치다시피 열고 지나가면 저절로 쿵! 닫히는 육중한 문들.

누가 뒤에서 카트를 밀고 오길래 문을 열고 몸을 문에 기대선 채 먼저 지나가기를 기다려 줬다. 그는 카트를 밀면서 묵묵히 내 코앞을 지나간다. '생큐'라는 말 한마디 없이. 정신과 의사 패싱? 혹시 인종차별?

그날 그룹 세션에서 "우리는 왜 남들에게 'Thank you'라 말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한 환자가 대뜸, 어떤 사람이 호의를 베풀었을 때 그 말을 한다고 싱겁게 대답한다. 나는 또 한 차례 어원학적 사실, 즉 'thank'가 'think'에서 유래됐다는 점에 대하여 입에 거품을 품고 떠들어댄다. 맞다. 'thank'라는 단어가 생겨난 14세기 이후, 서구인들이 누구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누구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나는 다시 질문한다. 남이 나를 생각한다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가?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즉, 우리 말로 내가 상대에게 베푼 친절한 행동에 대하여 모종의 보상을 은근히 강요할 때, "좀 생각을 해 주셔야 되겠습니다" 하는 것. 이때 '생각'은 감사의 뜻으로 전달되는 뇌물이나 금전일 경우가 많다. '감사=생각=성의표시'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한 환자가 답변한다. "누가 나를 생각한다는 것은 나를 인정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기분이 좋아집니다." 남이 나의 존재를 인정해 줄 때 우리는 기뻐한다. 그래서 누가 '생큐' 하면 기분이 좋은 거다.

다른 환자가 또 말한다. "I think, therefore I am." 이 똑똑한 젊은이는 오래 전에 데카르트를 들먹이며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몸서리 치며 깨닫는다. 아, 스스로 생각을 깊이 못하는 사람은 남이 저를 생각할 때 남의 생각에 힘을 얻어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는구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대신 "당신이 나를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하는 명제에 대하여 숙고한다.

'생큐' 했을 때 어떻게 응답하냐고 묻는다. 'You're welcome!'이라는 꼰대 티 나는 대답이 우세다. 우리말 번역의 '천만에요' '괜찮아요'는 자신의 친절한 행동을 절감시키는 분위기다. 미국인들도 'Not at all' 또는 'Don't mention it' 같은 겸손한 태도를 취한다.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에헴, 상대를 높여 주거나 자신을 낮추는 화법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화법이니라.

'생큐'에 대한 응답 중 'No worries' 'No problem' 같은 표현도 좀 수상하게 들린다. '걱정 마' '문제없어'로 풀이되는 이런 말에는, 걱정은 고마워하는 사람 측에 있고, 문제는 호의를 베푼 사람에게 있다는 전제조건이 숨어있다. 'You're welcome!'이 전해주는 쾌적한 분위기를 싹 없애고, 이런 식으로 상대를 안심시키는 수법이라니!

막판에 데카르트의 말을 기억했던 환자 때문에 빵터졌다. 그는 누가 '생큐' 하면 "Don't worry about it!" 한단다. 그래, 나도 그런 대꾸를 들어본 적이 있다. 고맙다 했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고마워하지 않으면 기분 나빠 할까 봐 내가 언제 걱정이라도 했다더냐? 그날 아침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내 호의를 묵살한 그 허우대가 멀쩡한 놈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크게 소리라도 칠 걸 그랬나.


서 량 / 시인·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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