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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호 역사칼럼] 심심풀이 땅콩의 역사

[애틀랜타 중앙일보] 발행 2019/09/10  0면 기사입력 2019/09/09 14:39

심심풀이 땅콩이라는 말이 있다. 심심할 때 땅콩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낸다는 뜻이다. 아마도 열차를 타고 가면서 긴 여행을 할 때 열차 내 판매원이 매상을 올리기 위해 만들어 낸 재미있는 말일 것이라고 추측된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면 승무원이 흔히 땅콩을 권하는 이유도 심심풀이 땅콩으로 시간을 지루하게 지내지 말라는 의도일 것이다. 키 작은 사람을 가리킬 때도 땅콩이라고 한다. 그만큼 땅콩이라는 존재가 우리와 친숙하고, 우리의 배고픔을 없애는 데 많이 공헌한 식품이라는 뜻이 되겠다. 그러나 땅콩이 우리의 생활에 들어 온 것은 불과 6백년밖에 되지 않는다. 감자, 고구마, 토마토, 옥수수, 고추 등과 마찬가지로 땅콩도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전해진 이후에 인류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는 식품이다.

사람들과 땅콩에 관해 얘기할 때 두 가지 놀라는 점을 발견한다. 두 가지 놀라운 점 중 처음 하나는 땅콩이 땅속에서 캐내는 것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그럴리가 없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우리말 땅콩이라는 말이 ‘땅속에서 나온 콩’이라는 뜻이라고 단어 자체가 알려주고 있는데도 말이다. 또 다른 하나는 땅콩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항로를 발견해 낸 이후에야 다른 대륙으로 전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이처럼 사람의 고정 관념은 유연성을 갖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땅콩은 신대륙이 다른 세상에 알려진 이후에나 다른 대륙으로 퍼지기 시작한 땅속에서 열매를 맺는 희귀한 작물이다.

땅콩의 원산지 지금의 페루 지역의 안데스산맥 지방으로 추정된다. 콜럼버스 이후의 대항해 시대에 남아메리카로부터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퍼지는 데는 불과 5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미국에서 땅콩이 본격적으로 많이 재배된 계기는 미국 남부 지방에 많이 재배하던 면화가 해를 거듭할수록 토지를 황폐하게 만든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땅콩이 콩 종류이기 때문에 스스로 질소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어서 토지를 기름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면화 재배로 황폐해져 가던 중 19세기 말 면화에 해충이 창궐하여 면화 밭이 버려지자 면화 밭은 빠른 속도로 땅콩 밭으로 변해갔다.

이 바람에 한때 땅콩이 너무 많이 생산되어 넘쳐나는 땅콩이 한때 큰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과잉 생산을 해결하기 위해 앨라배마의 한 대학에서 본격적인 가공 방법이 개발되어 과잉 문제는 금세 해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땅콩이 아주 유용한 자원으로 변모했다. 땅콩은 지방을 많이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식물성 기름을 얻는데 중요한 원료가 되는 등 땅콩의 활용도가 높아지기 시작해 현재에 이르렀다.

땅콩은 대부분의 식물과 마찬가지로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다. 하지만 땅콩에는 남다른 특성이 있는데, 땅콩 꽃이 지상에서 피는데, 땅콩 열매는 땅속에서 자라는 특이한 점이 있다. 꽃이 지고 씨방이 길게 자라면서 땅속으로 들어가 씨를 맺는다. 따라서 땅콩의 재배에는 모래가 많이 섞인 부드러운 땅이 유리하다.

영어로 땅콩을 ‘Peanut’이라고 하는데, ‘Pea’와 ‘Nut’이 합쳐진 말이다. ‘Pea’는 완두콩 종류를 말하는 것이고, ‘Nut’은 견과류를 뜻하는데, 땅콩이 콩의 한 종류인지, 아니면 견과류의 한 종류인지 정체성을 정하지 못해 두 가지 이름을 합성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땅콩이 콩의 한 종류인 것으로 확정되어 있다. 땅콩을 ‘Peanut’이라고 부른 것은 1807년 이후에 붙여진 이름이고, 그 이전에는 ‘Ground nut’ 혹은 ‘Ground pea’라고 불렀다. 우리말 땅콩도 여기서 유래한 듯하다.

미국 영어에서 ‘Peanut’은 땅콩을 뜻하는 이외에도 시시한 사람 혹은 시시한 물건을 가리키기도 한다. 아마 미국 초창기에는 땅콩을 사람의 식품으로 쓰기보다는 주로 가축에게 주는 사료로 이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땅콩이 본격적으로 사람의 식용으로 쓰게 된 것은 남북전쟁 이후라고 한다. 미국 남부에서는 과거에 주로 면화를 많이 재배했었는데, 면화에 병충해가 심해지자 면화 농장이 대부분 땅콩 농장으로 변모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 땅콩 농장 주인의 아들로 유명한 것도 그의 고향이 땅콩 농장이 낳은 조지아주 남부 지방이라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축의 사료로나 쓰이던 땅콩이 우리가 즐겨 먹는 기호 식품으로 자리 잡아 우리가 심심풀이로 먹는 땅콩에 아메리카의 역사가 서려 있다는 것이 뜻깊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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