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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나 홀로 서기

이기희 / 윈드화랑대표·작가
이기희 / 윈드화랑대표·작가 

[LA중앙일보] 발행 2019/09/10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09/09 18:21

아들이 변했다. 인간이 됐다. 장가 가서 애 놓고 생긴 반전이다. 아들은 날 닮아 성질이 급하다. 인내심이 부족하다. 컴퓨터나 인터넷에 문제가 발생하면 샌디에이고에 사는 아들이 원격제어 장치로 고쳐주는데, 최첨단 IT 기술에 무식한 내가 아들의 지시를 알아듣기는 커녕 얼토당토않은 질문을 하면 화를 버럭 낸다. 궁한 쪽이 내 쪽이고 공짜 서비스니까 끝날 때까지 참고 견딘다.

그런데 이번에 회사 컴퓨터 여럿 옮기고 네트워크 설치하고 라우터 옮기는데 주말 내내 차분하게 도와줬다. 무시 안 당하고 바보 소리 안 듣고 끝난 게 기특해서 "너 많이 변했다. 급한 성질 어디 갔니?"라며 애교를 떨었더니, 며느리가 '당신이 엄마한테 대들면 딸이 배워서 그대로 한다'며 주의를 줬다나.

아! 정말이지 나 홀로 서고 싶다. 안 묻고 눈치 안 보고 도움 안 받고 비실 안 대고 척척 박사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싶다. 내 이름 대신 BABO(바보)라고 핸드폰에 입력해 놓고 문자 날리는 아들에게 복수하듯 똑똑해지고 싶다. 독한 마음먹고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만을' 외치며 자립갱신의 길로 살 다짐을 한다.

반평생 이상을 남의 손에 의지해 빌붙어 편하게 살았느니 이제 홀로 서기 연습을 할 때가 됐다. 그동안 많은 것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한 것이 아닐까. 체념과 포기는 안 가본 길에 대한 망설임 때문이다. 홀로서기가 두려운 것은 '혼자'라는 단어의 두려움이 아닐까.

누구나 혼자 산다. 같이 살아도 혼자 산다. 태어날 때도 죽을 때도 혼자다. 어릴 적 엎어졌을 때 아무도 없으면 혼자 벌떡 일어났다. 멀리서 엄마 목소리가 들리면 크게 소리 내 울었다. 이제 울어도 소리쳐도 달려와 눈물 닦아 줄 사람 없다. 남아있는 시간, 살아갈 날들, 피곤한 일상의 손에 잡히는 건 허무의 신발 가게, 그 신발도 비어 있다.

이사 갈 준비하며 많은 것을 버리고 또 버렸다. 너무 많이 무겁게 힘들게 쌓아올렸다. 켜켜이 쌓인 생의 먼지를 털면 깃털처럼 가볍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난 이것 못해'라는 말은 아직 고생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죽는 것 빼곤 당하면 못해낼 일 없다. 여왕처럼 무거웠던 책무를 벗고 집시처럼 자유롭게 남은 생을 살리라. 완전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온전하게 홀로서기를 해야한다.

누구나 홀로다. 함께 살며 혼자 산다. 잠시 기댈 사람이 있어 의지했을 뿐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아들에게 비비대지 않고, 홀로서기 위해 최신 정보 기술 익히느라 정신없이 분주하다. 안 배우면 바보 된다. 나 홀로 서기 위해, 남은 시간 바보로 안 살기 위해, 바보 종료식을 위해 이판사판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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