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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겹쳐진 눈 한 개

박비오 신부 / 천주교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박비오 신부 / 천주교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LA중앙일보] 발행 2019/09/10 종교 26면 기사입력 2019/09/09 19:01

2015년에 시행되었던 자비의 대희년 로고가 생각나는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맞은 사람을 어깨에 들쳐 메고 있는데,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이 맞닿아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눈 개수를 헤아려 보면 네 개가 아니라 세 개다. 왜냐하면 눈 한 개가 서로 겹쳐져 있기 때문이다. '겹쳐진 눈 한 개'는 주님께서 바라보시는 것처럼 우리가 세상을 바라봐야 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가 말해야 함을 일깨워 준다.

우리는 각기 다 다른 사람들이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향성과 태도는 똑같아야 한다. 마치 각기 다 다른 악기로 같은 곡을 연주하듯이! 우리는 자신의 '고유한 삶'이라는 악기로, '하느님의 나라'라는 곡을, '사랑의 이중계명'이라는 음률에 맞춰 아름답게 연주하도록 초대받은 사람들이다. 이 곡을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도록 잘 맞춰나가는 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그런데 합주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수님도 이를 잘 알고 계셔서 우리들에게 가라지 비유를 들려주신 것 같다. '하느님의 나라'라는 밀밭에 가라지가 뿌려졌다. 농부는 수확할 때 가라지를 뽑아 불태워버리겠지만, 그때까지 농부는 가라지를 그냥 내버려 둔다. 왜냐하면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힐 수 있기 때문이다. 밀이 이 사실을 안다면, 밀은 가라지가 뽑혀나갈 때까지 인내하며 힘을 키울 수밖에 없다. 때로는 가라지에 저항하고, 때로는 가라지와 투쟁하며, 가라지와 공존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이것은 우리 공동체에 해당되는 이야기이고, 우리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안에는 일그러진 욕망과 하느님께 대한 순명, 상처로 인한 분노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가 뒤섞여 있지 않은가. 그러한 자신의 일그러진 욕망과 무지, 상처와 죄악과 투쟁하면서 자신의 소명을 키워나가는 것이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도록 초대받은 신앙인의 모습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본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의지의 일치가 일어나 완전히 서로 다른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함께 싫어한다. 이럴 땐 사랑의 이중계명은 내 밖의 계명으로서 나에게 압박을 가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의지가 되어 나의 고유한 삶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자비로운 하느님의 눈과 우리의 눈 한 개가 겹쳐지도록 초대받은 사람들이다. 깨어있음이란,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이런 우리의 신원과 우리의 역할을 통합시켜 나가는 여정이 아닐까? 하느님께서 바라보시는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도록 초대받았음에 감사드리고, 우리의 삶 안에서 하느님의 눈과 우리의 눈 한 개가 겹쳐졌음이 드러날 수 있도록 기도하자.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루카 12,37)

park.pi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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