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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동네 사랑방

안성남 / 수필가
안성남 / 수필가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9/09/10 미주판 16면 기사입력 2019/09/09 21:00

재미있는 사진 하나, 한 원시 종족의 밤 시간에 화톳불 앞에 모여 앉은 주민들이 특이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을 벌리고 어느 때 겪었던 신기하고 무서웠던 얘기를 전하는 듯 하고 들러 앉은 다른 사람들은 심각하게 그러나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 광경이 웃음을 불러낸다. 듬성듬성 서있는 나무 사이 벌판에 마련된 그 자리는 아마도 그 마을 모임의 장소인 듯 하고 우리 식으로 말하면 동네 사랑방인 듯 하다.

요즘 방송에는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보여주는 프로가 많다. 동네 구경을 따라가다 보면 거의 모든 동네에 주민들의 온갖 이야기가 오고 가는 그들의 쉼터이자 정보 교환과 안부 확인과 친교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있다. 그 동네 오래된 미장원이나 이발소 혹은 구멍가게 안쪽이나 마을회관 아늑한 방이기도 한 '동네 사랑방'이라 이름 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어느 집 경사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도 하고, 문득 시나 그림 공부를 하기도 하고, 십시일반으로 모아진 간식거리로 작은 회식이 벌어지기도 하고, 바둑 장기판을 꺼내 펼치고 도토리 키 재기 실력 발휘도 하고, 특별한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온 이웃의 신기한 경험담에 둘러 앉아 감탄하기도 하는 흥미만점의 장소 그곳이다.

어느 영화의 한 장면, 한국전쟁 중에 어린 학도병이 부상을 당했다. 이를 치료해 주던 간호원이 동생 같아 보이는 그에게 이것저것 묻지만 전장의 충격으로 멍멍한 그는 대답을 못한다. 그때 간호원의 대사가 오래 남는다. "와? 내랑 말 섞기 싫나?" 사람은 누군가와 말을 섞어야 하는 존재다. 교도소에서도 독방에 넣어지는 것이 아주 힘든 처벌이라고 한다. 동네 사랑방은 이걸 위해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없을 때 사람들은 아주 견디기 어려워 한다. 여기 뉴욕에서 가끔 어느 빵집이나 그런 곳에서 어떤 사람들이 차 한 잔으로 너무 오랜 시간 자리 잡고 있어 문제가 되기도 하는 그것의 바닥에는 그런 공간이 적어서 일어나는 일이라 볼 수 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말을 주고 받는 '말 섞는 좋은 공간'이 동네 사랑방이다.

사랑방이라는 공간이 한국 전통 가옥에 존재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마음 맞는 친구들이 모여 담소하고 취미를 즐기고 공통 화제나 관심사를 나누고 그에 관련한 활동을 같이 하는 특별한 여유와 활력을 주는 친밀한 공간을 마련하고 있는 한국적 문화 공간이 재미있다.

사랑방이 주는 분위기는 편안함과 친근함과 세상사 여러 가지에 대한 관심과 흥미로 표현할 수 있다. 당신은 라일락을 좋아하나, 나도 좋아한다. 5월은 라일락의 계절이다. 그래서 우리는 5월에 라일락 향기와 더불어 술 한 잔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어지는 사랑방의 대화는 끝없이 이어진다.

신문에 실리는 일반 기사도 좋지만 이런 저런 사람들의 이야기나 글이 실리는 곳에 더 관심이 가기도 한다. 그 지면에 실린 여러 가지 글을 읽다 보면 신문 위에 앉아 동네 사랑방의 냄새를 즐기는 듯한 기분이다. 어떤 방식이든 허물 없이 말을 섞고 지낼 수 있는 편안하고 재미있는 동네 사랑방이 있어 드나들 수 있으면 이는 즐거운 일에 틀림 없다.

받아 들은 옥수수의 껍질을 열고 잘 익은 알갱이를 보며 피어나던 느낌이 있어 적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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