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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좋은 동네

정들어 잊을 수 없는 마을이 있다. 실개천이 흐르고 황소가 울고 강물 같은 은하수가 밤하늘을 가로지르고 가족들이 오손도손 모여 사는 곳이다. 타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꿈에도 그리는 떠나온 곳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태어난 곳에서 자라고 살아가고 늙고 돌아가는 것이 이전에 보통 사람들의 삶이었으면 지금은 많이 달라진 세상 풍습과 문명의 발달로 그렇게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떠나 온 곳의 영상은 마음 속에 언제나 좋은 동네로 남아 있어 사람들을 위로한다. 언젠가는 그곳으로 돌아 갈 꺼야. 그날은 행복할 것이야.

미국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미국인들은 돌아가려는 마음이 약간 다른 것 같다는 점이다. 최근에 숲에 들어가 사는 생활을 기록한 책을 보았다. 독일에서 태어나 어느 시기까지 성장했고 그 후 미국에 옮겨와 살고 있는 저자는 느지막이 돌아와 살기 시작한 미국 어느 동네의 숲에 서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 고향에 돌아왔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먼 조상 때부터 살아왔다며 그 마을에서 살아가는 보통의 한국 풍경과 다르게 미국의 마을들은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무리 지어 옮겨가다가 살만한 터전을 발견하면 그곳에 발 붙이고 동네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이 보통의 미국 풍경으로 보여진다. 그곳을 좋은 동네로 만들기 위하여 과거는 묻고 각자의 능력대로 힘을 합하여 그렇게 했다. 그리고 자손을 키우면서 그곳을 그들의 고향으로 만들어 왔다.

한 때 우리가 잊고 있었던 세계에 흩어진 해외 한국인들의 자의로 혹은 타의로 머물게 된 그곳에서 끈기로 살아낸 이야기를 듣는다. 살기 힘든 척박하고 황량한 땅에서도 나름대로 좋은 동네를 이루고 살아냈고 이민족의 틈새에서 남다른 부지런함으로 앞서가는 삶을 이끌어 갔다. 이제는 한국 사람끼리의 좋은 동네를 넘어 세계 어디를 가도 그곳을 좋은 동네로 받아들이고 세계 속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한국인을 많이 보게 되었다. 사람 사는 것 다 똑같아요 하면서도 똑같지 않은 언어와 풍습의 동네에서 씩씩하게 생활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꼭 떠나온 곳이 좋은 동네라고 우기던 이전에 생각들을 돌아보게 된다. 지금도 많은 한국 사람들은 나중에 반드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살겠다고 고집을 세운다. 그럴 때면 또 다른 어떤 한국 사람의 말이 생각난다. "가보니 내가 생각하는 한국은 거기 없더라."

뉴욕에 발 붙이고 사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다. 지방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밤 길 저 멀리 맨해튼 불빛이 보이면 반가운 마음에 무엇인가 편안해지는 심정이 된다. 물론 긴 여행이 끝났다는 안도감일 수도 있지만 불빛 가득한 빌딩들의 모습에 내 사는 동네에 돌아왔다는 정겨운 마음이 더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뉴욕이 아닌 미국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그들이 사는 곳의 풍광과 분위기가 좋고 정답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살면서 정 붙인 곳이 아마도 좋은 동네가 되는 것 같다. 산 좋고 물 좋고 물레방아 돌고 느티나무 정자목이 지키는 고향이라 부르는 좋은 동네는 때때로 부르는 망향가 노래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섭섭함도 있지만 그 끈질긴 잡아당김에서 벗어나 여기가 내 살 곳이다 하며 자유롭게 가고 오고 머무를 수 있음이 시원하기도 하다.



지리적으로 공간적으로 혹은 시간적으로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린 마을이 있다 해도 우리들 속 깊은 곳에 좋은 동네를 간직하고 있으면 훨씬 살아가는 모양새가 괜찮아 질 것 같다. 살아가면서 고향을 갖는다는 것은 돌아갈 곳이 있다는 행복이다. 우리가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알게 되는 자신의 확인이다. 그리고 나서 앞에 놓여진 길에 정 붙이고 나아가면 어느 사이에 떠오른 좋은 동네를 품은 마음 부자가 된다.


안성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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