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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산책] 어떤 풍경

집에 도착하니 차고가 텅 비어 있다. 아들의 차가 주차되어 있던 자리가 빈 것을 보니 아들 가족이 떠났나 보다. 텅 빈 대문을 여니 썰렁한 기운이 밀려왔다. 아들 내외가 머무는 동안 패밀리 룸에는 손녀의 장난감이 흩어져 있고 다이닝 룸 식탁 옆에는 손자의 그네가 놓여 있었는데… 식사를 하는 동안 며느리는 아이 둘을 번갈아 그네에 태워 두곤 했었는데… 그네는 또 왜 떼어 간 것일까? 크게 도둑맞은 기분이 들어 패밀리 룸 한복판에 서 있다. 아들 내외가 머물던 방문을 열어 보았다. 방안은 언제 아이들이 지내다 간 것이냐고 묻는 듯 깨끗이 정리되어 있다.

늦가을 숲보다 쓸쓸한 방을 혼자 서성거렸다. 무엇을 잃어 버린 것처럼 두리번거리며 창문을 내다보기도 하면서 가끔은 환청까지 들렸다. 손자 손녀들의 웃음소리가 마당 그득 흘러 내렸다. 자식에 연연하지 않겠노라고 해 놓고 뭔지 모를 이 기분은 뭐란 말인가?

아들 가족이 머물던 방을 서성이며 혼자 중얼거렸다. "몹쓸 것들…." 몹쓸 것들이라고 불쑥 말을 내뱉고는 혼자 피식 웃었다. 몹쓸 것이라니? 아들 내외가 손주들을 데리고 놀러 와 준 것도 고마운데 몹쓸 것이라니?... 고개를 힘껏 내저으면서도 이 허전하면서도 푹 가라앉는 것 같은 기분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픈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린 것도 아니고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아린 것 같기도 하고 텅 빈 것 같은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이냐고.

허기가 몰려 왔다. 배고픈 마음에 처음에는 육인 분의 쌀을 쌀통에서 꺼냈다. 쌀을 들여다 보니 아들 가족도 떠났는데 많지 싶어 삼분의 일을 덜어 냈다. 쌀을 막 씻으려다가도 식구도 없는데 누가 다 먹을까 싶어 몇 번을 덜어 냈다.



냉장고를 여니 아이들과 함께 먹다 남은 반찬이 보였다. 적당히 데워서 적당히 먹자 싶어 먹다 남은 음식을 꺼내는데 등 뒤에서 남편이 배고프다고 소리쳤다. 오늘은 특별히 맛있는 걸 먹자고 한다.

아들 가족이 복작거리며 지내다가 떠난 텅 빈 공간에서 오늘따라 남편은 왜 또 맛있는 걸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일까? 나에게 허기가 느껴지면서도 입맛이 돌지 않는 이 상황은 뭐란 말인가? 나는 남편을 향해 눈을 흘겼다. 남편이 더 씩씩하게 말했다. "오늘은 내가 먹고 싶은 것 좀 먹자"는 남편은 정말 배가 고픈 것일까?

'내가 먹고 싶은 것 좀 먹자'라는 말이 정말 배고프게 들렸다. 퀭한 눈에 아주 잠깐 눈물이 맺히다 마르는 것 같은 느낌, 나는 남편을 바라보다가 어깨를 들먹이며 웃었다. 크게 우스운 일이 있었던 것처럼 소리 내어 웃었다.

내가 한국을 방문하고 떠날 때도 어머니는 이런 기분이었을까? 한국 방문 후 잘 도착했노라고 전화를 드리면 집이 텅 빈 것 같다고 하시던 어머니. 한국 방문 후 남편 곁으로 돌아오면 나는 당분간 어머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도 나와 내 아이들이 지내다가 떠난 방의 문을 골 백 번 열어 보았을 것이다. '몹쓸 것들' 이라고 욕 아닌 욕을 하면서 먹먹한 가슴을 여러 번 다졌을 것이 틀림없다.


김은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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