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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그레이 칼럼] 인형극 ‘아주 배가 고픈 애벌레’

지난 주말 아이들에게 친근한 동화작가 에릭 칼의 ‘아주 배가 고픈 애벌레’ 인형극을 보러 워싱턴 DC 교외 베데스다에 있는 ‘상상의 무대(Imagination Stage)’ 공연장으로 갔다. 2살짜리 손자가 처음으로 무대 공연을 보러 나선 길에 어른이 4명이나 동행했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지자 왁자지껄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공연장 안으로 들어서 지정석을 찾아 앉았다. 주로 1살에서 5살 아이들을 위한 공연이라 무대나 좌석 배정이 어느 곳에서도 잘 보이도록 배려 되어 있었다. 꼬물꼬물 작은 손들과 소음이 제멋대로 활개를 치다가 무대 위로 공연자가 나서자 모두 조용해졌다. 과연 이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가만히 있을 수 있나 궁금했지만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그것은 부질없는 걱정이었다.

에릭 칼의 동화책을 착실하게 따른 인형극은 등장인물이 모두 밝고 다양한 색감과 독특한 터치를 가진 그림책의 선명한 모습 그대로 무대에 등장했다. 거대한 갈색 곰이 천천히 무대에 나타나자 “갈색 곰아 갈색 곰아 무엇을 보고 있니?” 질문이 따랐다. 갈색 곰이 무대 반대편에 나타난 “나를 보는 붉은 새를 본다” 말하고 무대 뒤로 사라지자 똑 같은 질문이 이번에는 붉은 새에게 주어졌다. 붉은 새는 노란 오리, 노란 오리는 푸른 말, 푸른 말은 초록색 개구리,초록색 개구리는 자주색 고양이, 자주색 고양이는 하얀 개, 하얀 개는 검은 양, 검은 양은 금붕어, 금붕어는 선생, 선생은 아이들을 봤다. 그러자 아이 관객들은 갈색 곰에 이어서 차례대로 무대에 나타난 동물들을 열거했다.

이어서 ‘아주 외로운 반딧불’과 ‘10작은 고무 오리’ 스토리가 차례로 무대 위에 소개됐다. 모두 숨 죽이고 구경하다가 가끔 공연자가 아이들을 스토리 속으로 안내하면 즉시 반응을 보였다. 아직도 가슴은 아이인 어른들이 옆에 앉거나 무릎에 앉은 아이와 함께 즐겁게 응답했다. 계속해서 ‘아주 배가 고픈 애벌레’ 스토리가 무대위에 펼쳐지자 이제는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함께 참여해서 스토리를 풀었다. 날렵한 무대장치에 빛과 음향효과가 보태어져서 아이들의 상상력에 불을 밝혔다.



근 50분 공연이었지만 아이들이 전혀 지루함을 보이지 않고 무대 위의 스토리에 집중한 것이 신기했다. 컬러풀한 동물 인형들과 번복되는 단순한 대사들, 그리고 재미나게 이어지는 스토리가 모든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무대 공연의 신비함을 맛본 아이들이 연기자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떠나기 서운해서 머뭇거리는 것 또한 재미있었다. 더 오래 머물고 싶은 손자도 사위가 번쩍 안아서 어깨위에 목말 태우고 데려 나왔다.

무대공연을 보고 온 후부터 아이는 ‘아주 배가 고픈 애벌레’ 와 ‘갈색 곰아 갈색 곰아 무엇을 보고 있니?’ 책을 혼자 읽으며 연극배우 흉내를 낸다. 손자의 그럴듯한 강약 목소리 구사에 웃음이 나오고 손자의 마음에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는 창조적인 동화책들을 나도 새삼 좋아하게 됐다. 아이와 함께 동화책의 스토리를 이야기하고 등장인물들의 특성과 작품이 주는 기분을 나누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길을 지나다가 아이에게 “무엇을 보고 있니?” 물으면, 주로 건축 장비들과 소방차와 경찰차를 본다고 하지만 길 위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도 아름답다고 말한다. 어쩌다 높은 첨탑이 보이면 교회를 본다고 소리친다. 아이의 시선을 통해 보는 건조한 대도시 환경에 젖은 가을빛이 아리고 아이처럼 나도 눈높이를 조금 낮추니 세상이 단순하다.

아이와 노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이가 들수록 아이가 된다는 말이 맞다. 미술관에 들러 작품을 볼 적에도 나에게 다가오는 첫인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어려운 추상화를 나름대로 해석하려는 노력은 더이상 하지 않는다. 세상의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어지고 모든 일을 보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더불어 언어의 복선이나 뉘앙스을 의식하지 않고 마주치는 일마다 그저 긍정적으로 컵에 물이 반이나 있으니 감사하다.

아주 배가 고픈 애벌레가 이것저것 실컷 먹고 누에가 되었다가 아름다운 나비로 변신하듯이 질문이 많은 어린 손자도 이런 저런 지식을 잔뜩 흡수해서 훗날 사회에 기여하는 바른 성인으로 자라주길 바라는 것이 나의 기도다. 오늘은 워싱턴 내셔널스 야구팀의 월드 시리즈 우승 기념 퍼레이드 보려고 손자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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