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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흔적을 지우는 일

꽤 오래전 일이다. 유럽 쪽에 사는 친구와 특별한 일이 아니면 늘 e메일로 소통하였다. 급한 상황을 제외하면 전화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적인 방법이었고 또 시차를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되는 일석이조의 편리함 때문에 늘 그 현대기기의 혜택에 고마운 마음이었다. 요즈음은 더 빠르고 편리한 수단으로 손에 있는 전화기가 이 일을 대행해주어서 더더욱 간편해진 ‘IT’ 세상을 누리고 있다. 그 친구가 갑작스러운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나서 나의 컴퓨터에 남은 그녀의 e메일을 보면서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남편의 대선배께서 지난해 갑작스레 부인과 사별을 하셨다. 본인이 스스로 운전하여 병원으로 검진을 가셨고 곧장 입원할 만큼 증세가 급변하시면서 3일 만에 작고하셨다. 가족들은 물론이고 부고를 접한 주위의 많은 친지가 믿을 수 없으리만큼 졸지에 가셨다.

장지에서 뵙고 한 달쯤 지난 후에 그 선배의 사무실을 찾았을 땐 우선 생각보단 밝은 표정이셔서 나름 놀라게 되었다. 담소를 나누다 식당으로 떠날 즈음에 상의 주머니에서 분홍색 커버를 한 사모님의 전화기를 꺼내 보여주신다. “출퇴근도 같이하고 저녁에 집에서 충전시켜서 나랑 같이 회사에도 오고 가고 하니 아직은 살아있는 것처럼 지낸다”고 하시는 말에 가슴이 먹먹하여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었다. “가끔은 카톡이 올라오는데 간단히 고맙다는 답신도 보내지요” 하셨는데 이 전화기를 들고 늘 같이 다니시는 걸 아는 분들이 카톡 문자를 보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하늘나라에 계신 분의 전화기이지만 그 아내분의 흔적이 많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60여 년을 넘게 동고동락한 이 표적들을 어찌 짧은 시간에 다 지울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니 그 노 선배님의 순고한 사랑을 조금이나마 알 듯하였다.

3년 전 오월이다. 거리는 멀지 않지만 타 주에 사는 친구의 e메일 주소를 지우는 일로 한 번 더 나는 꽤 오랫동안 가슴앓이를 하였다. 목록에서 비슷한 알파벳을 가진 사람을 치면 그녀의 이름이 훌쩍 올라왔다. 남달리 쾌활하던 그녀의 웃음이 보이고 같이한 여행지의 장면들이 오랫동안 나의 컴퓨터를 떠나지 못했었다. 조촐한 나무관에서 한 줌의 재로 돌아오던 이 세상 마지막 그녀의 표적을 못내 지울 수 없었지만 어느 날인가 나는 주소 지우기에 ‘클릭’을 하였다. ‘천국에는 배달이 불가능’한 소통 방법이기에 가슴 한 모서리에 모아두리라 생각을 고쳤었다.



그런데 오늘은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40년 지기 교인, 나의 아우의 친구, ‘사랑이 많아 늘 따뜻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부음을 듣는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자 벌써 ‘뇌사’ 판정을 받았고 현대 의학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다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48시간을 버티는 동안 사랑하던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마지막 ‘Good Bye’ 그리고 ‘I love You’의 청천벽력같이 짧은 시간만 허락하고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나는 다시 한번 더 이 ‘사랑의 흔적’을 지우는 일과 가슴앓이를 거쳐야 한다. 이 인연의 ‘흔적’들을 쉽게 지우는 방법이 있기나 할까?


김옥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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