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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대선 묘수풀이를 보는 재미

‘드라이버는 쇼, 퍼팅은 돈.’ 골프애호가들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말이다. 호쾌한 드라이버는 보기엔 시원하지만, 시합에서 이기려면 퍼팅을 잘해야 한다는 경험법칙이 담겨 있다.

이는 바둑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골프는 스코어가 말해주듯이 바둑은 항상 집이 말해 준다. 대국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집이 부족하면 결국 진다. ‘집’은 프로 세계에서 생명이자 돈이다.

팬들은 ‘화끈한 것’을 기대하지만, 실리를 추구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그런 장면은 좀처럼 구경하기 힘들다. 정치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정치인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결코 모험은 좋아하지 않는다. 시나리오에 따라 연기를 할 뿐이다.

워싱턴 정가는 나름 틀이 짜여 있다. 또한 세습되는 경향을 보인다. 케네디와 부시 가문이 대표적이다. 케네디 집안 출신 인물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언론의 관심거리였고, 부시 가문은 대를 이어 대통령직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클린턴 가문도 명가의 반열에 오를 뻔했다. 이를 가로막은 장본인이 바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기존 정치인의 시각으로 보면 그는 이단아(?)이다. 심하게 말하면 굴러온 돌이다.



그런 트럼프가 지난 대선에서 어떻게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었을까?

다시 바둑 이야기다. 2000년대 들어서자 질서정연한 포석과 강약의 조화로 대변되던 바둑계에 ‘힘의 광풍’이 몰아쳤다. 기존 포석의 개념은 사라졌다. 위기를 수습하는 타개(打開)조차 공격적이고 서슬 푸르게 변했다. 힘과 힘의 충돌 속에서 ‘거칠어야 살아남는다’는 것이 기사들의 명제가 됐다.

이 같은 변화를 주도한 기사 가운데 이세돌 9단이 있다. 알파고와 세기의 대결로 유명한 그는 아마추어 바둑팬들에게 환호성을 불러일으킬 만큼 여러 가지 매력적인 요소를 갖췄다. 전투란 매개체를 통해 국면운영을 시원스럽게 풀어나가는 그의 기풍은 우리에게 한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선사하곤 했다.

이런 시각에서 미국 정치계도 트럼프 대통령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그의 기풍은 수읽기를 기반으로 한 힘의 바둑이다. 부조화(不調和)를 통해 목적을 추구한다. 다시 말해 힘과 배짱으로 기존 정치권의 균형을 무너뜨리며 승부수를 던진다.

자유분방한 트럼프는 예측을 불허한다. 자극적 기삿거리에목말라하던 언론은 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주목하며 기사를 쏟아 놓았다. 실제 대선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도 관련 기사는 대부분 트럼프가 주제이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관련 기사는 여론조사를 빼고는 조금 과장해서 양념에 불과하다.

그런 트럼프가 최악의 위기에 몰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후보에게 뒤지던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대통령 덕목 가운데 하나인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이에 따라 재선은 물 건너갔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국면전환을 위한 깜짝 이벤트를 펼치고 있다.

군 병원에서 입원 치료받은 지 불과 나흘 만에 조기 퇴원했다. 입원 중에도 지지자들을 위해 깜짝 외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증환자에게 사용하는 렘데시비르와 제너릭 스테로이드인 덱사메타손까지 투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퇴원 후 코로나19에 지배당할 필요도 없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20년 전 보다 더 좋은 느낌”이라며 건재를 과시하고 트위터와 온라인으로 선거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트럼프의 확진이 대선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미국 전역이 긴장하고 있다. 우선 그의 코로나 대응 실패를 더욱 부각시켜 재선 가능성이 더 낮아질 것이란 분석이 있다. 반면, 열성 지지자들에게 동정심을 유발하고 극복과정을 보여준다면 지지표를 더욱 결집해 재선에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관건은 남은 TV토론이다. 예정대로 토론이 열리고 트럼프의 승부수가 통한다면 전세가 역전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싸움 바둑은 기복이 심해 그만큼 위험부담이 높은 게 약점이다. 싸움이 먹혀들 때는 무쇠도 녹일 수 있는 힘이 나오지만 일단 ‘이상’이 생기면 약자에게도 허망하게 무릎을 꿇는다.

첫 토론에서 바이든도 만만찮은 맷집을 보였다. 그는 앵무새가 울 때까지 참고 기다린다. ‘타개의 명수’라 불리는 트럼프는 어떤 묘수풀이를 준비하고 있을까? 대선 드라마는 끝까지 땀을 쥐게 한다.



권영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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