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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SAT 시험의 금수저와 흙수저

김완신/논설실장

최근 한국사회에서 가장 많이 화제에 오르는 말은 '금수저'와 '흙수저'다. 재력과 학벌을 갖춘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식은 금수저에, 그렇지 못한 가정의 자식은 흙수저에 비유한다. 처음에는 기발한 신조어 정도로 취급 받았지만 지금은 사회 각 분야에서 가진 자와 못가진 자를 구분하는 '수저 계급론'까지 등장했다.

한국에 금수저가 있다면 서양에는 은수저가 있다. 1700년대 중상층이 자신을 평민이나 노예와 구별하기 위해 소지해 왔던 은수저가 신분증명으로 사용되면서 부와 계급의 상징이 됐다.

빈부격차가 없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부와 가난의 대물림이 고착화되고 하층에서 상층으로의 통로가 더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부모의 신분을 선택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신분은 각자의 의지로 바꾸려는 기회마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흙수저가 금수저로 가는 대표적인 통로는 교육이었다. 신분제도가 사라지고 개인의 능력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시대에 교육의 역할은 중요했다.



그러나 계층 상승의 발판이었던 교육이 이제는 역할을 잃어가고 있다. 학력의 대물림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부모와 자녀 모두 대졸인 비율이 산업화세대(1940~59년생)에서는 64%였지만 민주화세대(1960~74년)는 79.7%, 정보화세대( 1975~95년생)는 89.6%로 늘었다. 부모 학력이 자녀 학력을 결정하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반면 2대에 걸쳐 하층민에 속하는 비율은 산업화(35.7%), 민주화(36.4%), 정보화(50.7%)로 계속 높아졌다. 흙수저 부모에서 태어난 자식이 또다시 흙수저 부모가 되는 악순환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부모 재산과 자녀 학력과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SAT 성적이다. SAT를 처음 고안했던 학자들의 목표는 응시 학생들의 인종이나 사회.경제적 계층에 따른 성적차이를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취지와 달리 SAT는 부잣집 학생에게 '전적으로' 유리한 시험으로 전락했다.

비영리교육단체 페어테스트(FairTest)가 2014년 SAT 성적과 부모 재산을 비교한 결과 가구 소득이 많을수록 성적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구소득 2만달러 미만인 학생의 평균점수는 1324점(2400점 만점)에 불과했지만 20만달러 이상 가정의 학생은 1722점으로 집계됐다. 거의 400점 차이다. 더욱이 2만달러 미만에서 20만달러 이상까지의 10단계 구분에서 한 단계도 예외없이 '수입이 많을수록 점수가 높아지는 정비례'는 지켜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같은 결과에 대해 SAT가 '학업 적성 테스트(Scholastic Aptitude Test)'가 아닌 '학생 재력 테스트(Student Affluence Test)'가 됐다고 지적한다. 작년까지 SAT는 수학.독해.작문 3개 부문으로 실시됐지만 올해부터 작문을 선택과목으로 분류했다. 이번 결정에는 부유층 학생과 저소득 학생의 작문 점수차이가 평균 78점으로 나타나 수학(75점)이나 독해(72점)보다 높게 나온 것이 한 이유가 됐다.

교육전문가들은 시험방식을 개선해 빈부에 따른 성적차이를 조금 줄일 수는 있지만 결국은 '돈'이 문제라고 강조한다. 빈곤층 학생이 부유한 가정에서 상대적으로 양질의 교육을 받는 학생과 경쟁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1960년대 결성된 영국 록그룹 '더 후(The Who)'의 노래 '서브스티튜트(Substitute)'에는 "나는 '플라스틱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가사가 나온다. 대용품으로 살아가야 하는 젊은이의 자조를 담은 곡으로, 은수저의 반대를 플라스틱수저로 표현했다. 흙수저와 플라스틱수저는 견고하지도 못하고 빛도 나지 않는다. 금과 은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흙과 플라스틱이 생존을 위한 '먹기'의 도구인 수저에 결합된 것도 절망의 깊이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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