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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공백의 세월

정순덕 / 수필가

올해가 남편이 떠난지 10년이 되는 해다. 그가 없는 공백의 세월, 때로는 쓸쓸히 때로는 즐겁게 지내면서 옛 선현들의 좋은 글을 담은 서예공부를 해 오고 있다. 아직도 많이 미흡하고 갈 길이 먼 나의 글씨지만 그를 기리고 그래도 삶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예전을 갖게 됐다. 삶은 언제나 결과보다는 자기의 이상을 추구하는 그 과정이 아름다운 것이므로 부족한 내가 용기를 냈다.

10년 전 그가 담당의사로부터 "이젠 준비하실 때가 온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나에게 조용히 "내 인생도 이렇게 끝나는구나…"라고 했을 때 내 인생도 이젠 끝났다 생각했다. 그 누구의 위로도, 충고도 아랑곳 없는 삶 속에서 허우적거려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련한 기억 속에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혼자되시어 그토록 오래 계시면서도 늘 부지런하시고 열심히 사시던 그 분의 모습이 초라한 나에게 강하게 다가오는 것이였다.

독서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묵향이 깃든 서예는 새로운 나의 삶의 무궁한 벗이 되리라 가슴을 치는 소리에 나는 오늘도 그와 벗 하고있다. 서예(書藝)란 붓으로 글씨를 쓰는 예술을 말한다. 중국에서 발생한 예술형식의 하나로서 한국 및 일본에 전래돼 한자뿐만 아니라 해당 나라의 글씨체(한글.가나)를 예술적으로 종이위에 표현하는, 더 나아가 기술적 측면을 넘어서 정신수양의 수단으로 인정 받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서도(書道)'라고도 한다.

깊은 늪에 빠저있는 나를 심오하고 변화무쌍한 푸른 호수로 인도하여 서예의 길을 인도해 주시고, 간간히 밀려오는 자책 속에 몇 번이나 주저앉고 싶은 나를 끈질기게 붙잡아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은사이신 유영은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 서체(書體) 종류로는 해서.행서.예서.초서.전서로 나누는데 오랜세월 해서.행서.예서체를 많이 공부하고 있는데 간간이 초서.전서도 그 맛을 보고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현상이며 자연스러운 우주의 섭리다. 우리는 늙어서 할 수 없는게 아니고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없는 것이다. 원시적 눈을 가진 미국의 샤갈(Marc Chagall) 이라고 칭송받는 해리 리버맨(Harry Lieberman 1880-1983)은 은퇴하고 심심해서 74세부터 그림을 그렸는데 106세에 세상을 떠날 때 까지 화가의 삶을 살았고, 어린애 같이 소박하고 원시적인 그림들은 뉴욕의 'Museum of American Folk Art'와 'Jewish Museum' 등 유명한 박물관에서도 앞 다투어 전시한 유명한 화가였다. 그는 항시 꿈을 가지고 무언가 할 일이 있는 것, 그게 바로 삶 이라고 했다.

오늘도 하루는 덧없이 흘러간다. 지난 삶을 둘러보면 슬프고 억울하다고 푸념도 많이 했건만 생각하면 분에 넘치는 감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바쁜 삶 속에서 항시 앞만 보고 달리던 나에게 여유를 가지고 삶을 둘러볼 수있게 '글 읽고 쓰는 사람'으로 길을 열어주신 김정기 스승님의 은혜를 감사한다.

'내려 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내가 좋아하는 고은 시인의 시(詩)다. 공백의 세월은 오늘도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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