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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진주만에서 생각한 전쟁

권소희/소설가

언제나 그렇듯이, 진실이 보존된 전쟁기념관에 들어서면 빛바랜 과거라 할지라도 마음이 먹먹해진다. 셔틀 페리를 타고 USS애리조나가 침몰된 지점에 세워진 USS애리조나 추모관에 들어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5개국 순방에 앞서 하와이를 방문했던 그 즈음에 나도 하와이에 있었다. 하와이 방문은 올해로 세 번째다. 와이키키 해변이나 폴리네시안 민속촌에 대한 설렘은 이제 없다. 다시 찾은 도울(Dole) 플랜테이션에서 사먹은 파인애플 아이스크림 맛도 기억 속의 그대로다. 하지만 열 번을 찾는다한들 전쟁의 흔적이 보존된 추모관이 식상할 리 없다. 누군가의 희생은 늘 고맙다.

바다 속에 수장된 병사들에게 하늘을 보여주기 위함일까. 지붕 없이 설계된 건축구조물 사이에 솟아있는 성조기는 흰색 만큼이나 경건하게 바람에 휘날렸다.

미주리 함 선상에 서서 나는 빚진 자라고 생각했다.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준수하겠다는 내용에 항복서명을 하던 역사적인 장소였던 미주리 함은 일본 사람에게는 치욕의 장소로만 기억될 테지만.



'War in Korea'라고 굵은 고딕체로 써 있는 패널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패널 서문에는 "잊혀진 전쟁이라고 불려졌던…"라는 문구로 시작했다. 한국전쟁, 한국이란 나라가 지구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몰랐을 시절에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UN군 병사들의 모습이 한 컷씩 걸려있었다. 방한복을 입고 쪼그리고 앉아 커피를 마시는 뉴질랜드 병사의 눈 덮인 배경이 눈길을 끈다. 저 병사는 생존했을까. 겨울을 몰랐을 그 병사는 한국의 추운 겨울이 얼마나 당혹스러웠을지. 한쪽 벽면에 UN군 전사자 5만여 명 중에 미군 전사자 수는 3만3652명이라고 명시됐다. 미국에 대한 감사를 저버릴 수 없는 이유다.

트럼프의 방한이 끝나고 문재인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다. 베트남 국민들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는 메시지를 영상으로 전했다고 한다. 뭉클했다. 외교적인 문제로 논란거리가 될 거라고 청와대 참모들이 만류를 했다지만 나는 메시지를 전적으로 지지한다.

비둘기 부대를 시작으로 정글에서 용맹을 떨쳤던 맹호, 청룡, 백마부대의 무용담은 자랑스럽다. 한국은 월남전에서 벌어들인 외화로 가난을 벗어나는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용맹의 뒷모습은 어두웠다. 베트남 전에서 전쟁포로가 한 사람도 없다던 국방부 거짓발표, 전과를 위해 과장되거나 덮어버린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고엽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상의용사들의 아픔만큼이나 상처가 깊다.

전쟁은 승전국이든 패전국이든 인류 모두에게 도의적인 부채를 떠안는 일이다. 전사자에 대한 감사와 무고한 희생에 대해 참회하는 것은 역사의식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가져야 하는 의로운 양심을 보여주는 일이다.

전범국가 일본이 무조건 사죄해야 하는 이유다. 양심이 있다면 보상금이 아니라 전쟁 중에 저지른 만행에 대해 진심으로 용서를 빌어야 한다.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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