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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칼럼] 겨울 숲을 바라보다

갑작스레 차가워진 날씨에 정 할머니의 천식이 도졌다. 겨울철이면 흔히 벌어지는 응급상황이다. 어둑새벽에 911 앰브란스를 부르고 응급실로 옮겨 처치를 끝내고, 일반 병실로 옮기고 나니 어느새 하루의 반나절이 지났다. 팽팽했던 긴장감을 풀어볼까 싶어 집으로 가는 길에 공원을 향해 차를 돌렸다. 맑은 하늘과 자연이 어우러진 도심 속 공원, 자연의 풍경이 빼어난 곳을 일부러 찾아갈 필요 없이 자연의 모습을 간직한 공원이 가까이에 있는 것은 큰 행운이다.

아스팔트 길을 벗어나 숲속 좁다란 오솔길을 걷다가 올려다본 하늘, 뾰족해진 나뭇가지 끝에 구름이 걸려 있다. 비움의 의미가 내려앉은 겨울 숲, 벌거벗은 나무들 사이로 발길이 닿는 곳마다 낙엽이 깔렸다. 가끔 숲속 오솔길을 거닐다 보면 ‘나무들의 언어는 낙엽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난날의 화려한 언어를 모두 털어낸 듯 벌거벗은 겨울 숲의 침묵,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는 노인의 고요한 깨달음과 같은 이치가 아닐는지.

응급실에서 산소마스크를 하고 침대에 누워있던 할머니에게 의사가 물었다.
“응급 시에 생명 연장을 위한 처치나 보조 장치를 받겠습니까?”
“아니요.” 할머니의 짤막한 대답이었다.



천식 증상이 가라앉으면 할머니는 퇴원할 것이고, 예전처럼 할머니는 고양이 밥을 챙기며 가끔은 심심풀이 쇼핑을 하면서 천수를 누릴 것이다. 그러나 의사의 질문에 대답하는 할머니의 표정이 너무 비장해 보여서 ‘안돼요’라는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올 뻔했었다.

직업 탓이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임종을 많이 지켰다. 그중에서 오 년 전에 돌아가신 박 할머니의 이야기는 잊히지 않는다. 그분은 평상시에 살 만큼 살았는데 더 살아서 뭐하겠냐는 말을 노상 입에 달고 사셨었다. 어느 날 숨이 가쁜 증세로 응급실에서 처치를 받았고,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하루 정도 입원하라는 말에 안심했었다. 그러나 다음 날 방문했을 때 할머니는 중환자실에 있었다. 나를 본 할머니가 자꾸 뭔가를 말하려는 것 같았다. 산소마스크를 잠시 떼고 할머니 입 가까이에 내 귀를 대었을 때 “제발 나 좀 살려 주세요”라고 했었다.

죽음의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슬픔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나는 과거에 내가 경험했던 죽음의 느낌을 거의 15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사람이 다스릴 수 없는 영역에 있는 죽음을 두려워했다기보다는 이 좋은 세상을 다시 살 수도 볼 수도 없다는 것이 너무 슬펐었다. 그렇다. 죽음이 내 앞에 다가오면 다른 어떤 삶보다도 내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하다 보면 피해갈 수 없는 늙음에 대하여 많은 가르침을 얻는다. 그중에서 자신의 삶을 하찮게 여기거나 작은 일에 집착하는 노인의 모습보다 실망스러운 것은 없었다. 다음 계절을 위해 모든 것을 비워 낸 겨울 숲의 텅 빈 모습처럼, 자신을 비워낸 노인의 모습이 가장 행복하게 보였다. 행복한 노년이란 무엇일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자신에게 남겨진 ‘지금’을 잘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살아 숨 쉰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행복감이 마음속에서 투명한 물처럼 차오르는 날이 있다. 뭔가 귀중한 것을 지켜냈다는 뿌듯한 느낌. 그런 날엔 뻥 뚫린 하늘의 깊이와 구름의 흐름, 마른 잎 사각거리는 소리, 바람결의 흐름까지 다 느껴진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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