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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꼴찌도 즐거워

양주희 / 수필가

일광 절약 시간이 해제 되는 날이 변함없이 뉴욕시티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2주 전 뉴욕시티에서 테러가 있었다. 5만 명이 넘는 러너들을 위하여 특별 안전대책이 발동했다. 경기가 끝나는 센트럴파크를 시점으로 파킹은 물론 비상 경비 속에 경찰들이 지키고 있었다. 항상 65가 링컨센터 앞에 차를 세웠는데 올해는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 파킹이 어려웠다. 겨우 69가 콜럼버스 애비뉴에 차를 파킹했는데 택시를 찾을 수가 없다. 6시가 조금 넘었는데 길을 막아 차가 지나가지 않는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42가에서 마지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참가번호 29540, 올해는 운 좋게 앞 번호다. 이번에는 다른 해와 달리 선수들이 기다리는 공간을 해체시켜 놓았다. 버스나 페리를 타고 집합해서 출발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지루하다. 비가 내려 바닥이 축축하고 춥고 기댈 곳도 없으니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없다. 특별한 커스텀을 입은 사람도 보이지 않고 아르헨티나 관광객이 테러를 당한 때문인지 아르헨티나 국기인 흰색과 파란색 줄무늬 셔츠를 입은 사람이 많다. 셔츠에 10번 매시 선수 이름이 새겨진 셔츠가 가끔 눈에 띄었다.

항상 빨리 뛰지 못하는 그룹은 맨 뒤에 출발했다. 빨리 달릴 수 없는 사람끼리 뛰다 보면 치쳐서 걷게 된다. 올해는 못 뛰는 사람과 잘 뛰는 사람들을 함께 뛰게 했다. 나는 4시간 정도에 완주하는 그룹이었다. 4마일쯤 같이 달리다 보니 뒤처지기 시작했다. 브루클린 4번가 넓은 도로에 빨리 달리는 사람은 이미 지나갔고 몇 명 남지 않은 사람들이 달린다. 길가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보면 달리는지 걷는지 구별이 어려울 것 같은 모양새다. 뒤쳐진 나에게 "Go Go. Strong, You can do it, Excellent. You are the best. Fighting! Bravo!" 세상에 있는 찬사는 다 외친다. 꼴찌로 달리는 기쁨도 있다. 이 꼴찌를 힘찬 박수와 격려로 맞이해 주니 젖 먹던 힘이 저절로 나와 양다리가 빨리 움직인다.

1마일 마다 물을 공급해주고 에너지 음료를 준다. 자원봉사자들의 노고가 녹록지 않다. 가랑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인도에는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 있다. 다른 어느 해보다도 많은 인파인 것 같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밴드가 자리 잡고 춤을 추거나 우렁차게 노래를 불러 준다. 뛰는 사람들에게 소소한 음료수 같다. 브루클린 유대인 중심가를 지나는데 강남 스타일을 부르면서 요란스럽게 말 춤을 추고 있다.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커피 한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여자.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 그런 반전 있는 여자. 싸이가 와서 부르는 줄 착각했다. 흑인 그룹인데 발음이 한국 사람보다 더 정확했다. 그 리듬으로 2~3마일은 흥겹게 뛸 수 있었다.

러너들 중에는 뉴욕 마라톤을 20번 이상 뛴 경력자들이 있다. 주최 측에서 카운트 번호를 등 뒤에 부착 시켜준다. 23번도 있고 27.28.32번도 있다. 머리가 하얗고 근육도 늘어져 연로해 보인다. 하지만 다른 사람 도움 없이 묵묵히 달린다. 그 뒤를 따르다 보면 얼마나 마라톤을 사랑하고 남다른 열정으로 연습했는지 눈으로 보인다. 균형 잡힌 몸매, 한 발짝 한 발짝 뛰는 간격과 거리 조절, 닮고 싶은 몸 놀림이다. 길가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이 보면 뛰는 선수들의 표정과 몸 동작이 다 다르다고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쳐다보는 것도 큰 재미라고 한다.



뛰는 사람들은 길가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이 다르다. 손뼉을 치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많지만 묵묵히 하나하나 지나가는 선수들을 관찰하는 사람도 있다. 그 중에서 어린 아이들은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한지 유심히 쳐다본다. 부모 옆에 가만히 서있는 아이들이 있고 긴 팔을 뻗고 손뼉 쳐주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다. 몸을 움직이며 자기도 뛰고 싶은 욕망이 보이고 언젠가는 꼭 도전해 보겠다는 각오도 하는 것 같다. 떨어지는 낙엽이 바람에 나풀거리면서 선수들을 맞이한다. 센트럴파크 한 바퀴를 돌아 노래와 함성이 울려 퍼지는 곳이 보인다. 마지막 힘을 쏟아야 하는 언덕이다. 그렇게 6시간 15분을 달렸더니 부상으로 큰 완주 메달이 목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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