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꼴찌도 즐거워
양주희 / 수필가
항상 빨리 뛰지 못하는 그룹은 맨 뒤에 출발했다. 빨리 달릴 수 없는 사람끼리 뛰다 보면 치쳐서 걷게 된다. 올해는 못 뛰는 사람과 잘 뛰는 사람들을 함께 뛰게 했다. 나는 4시간 정도에 완주하는 그룹이었다. 4마일쯤 같이 달리다 보니 뒤처지기 시작했다. 브루클린 4번가 넓은 도로에 빨리 달리는 사람은 이미 지나갔고 몇 명 남지 않은 사람들이 달린다. 길가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보면 달리는지 걷는지 구별이 어려울 것 같은 모양새다. 뒤쳐진 나에게 "Go Go. Strong, You can do it, Excellent. You are the best. Fighting! Bravo!" 세상에 있는 찬사는 다 외친다. 꼴찌로 달리는 기쁨도 있다. 이 꼴찌를 힘찬 박수와 격려로 맞이해 주니 젖 먹던 힘이 저절로 나와 양다리가 빨리 움직인다.
1마일 마다 물을 공급해주고 에너지 음료를 준다. 자원봉사자들의 노고가 녹록지 않다. 가랑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인도에는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 있다. 다른 어느 해보다도 많은 인파인 것 같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밴드가 자리 잡고 춤을 추거나 우렁차게 노래를 불러 준다. 뛰는 사람들에게 소소한 음료수 같다. 브루클린 유대인 중심가를 지나는데 강남 스타일을 부르면서 요란스럽게 말 춤을 추고 있다.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커피 한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여자.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 그런 반전 있는 여자. 싸이가 와서 부르는 줄 착각했다. 흑인 그룹인데 발음이 한국 사람보다 더 정확했다. 그 리듬으로 2~3마일은 흥겹게 뛸 수 있었다.
러너들 중에는 뉴욕 마라톤을 20번 이상 뛴 경력자들이 있다. 주최 측에서 카운트 번호를 등 뒤에 부착 시켜준다. 23번도 있고 27.28.32번도 있다. 머리가 하얗고 근육도 늘어져 연로해 보인다. 하지만 다른 사람 도움 없이 묵묵히 달린다. 그 뒤를 따르다 보면 얼마나 마라톤을 사랑하고 남다른 열정으로 연습했는지 눈으로 보인다. 균형 잡힌 몸매, 한 발짝 한 발짝 뛰는 간격과 거리 조절, 닮고 싶은 몸 놀림이다. 길가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이 보면 뛰는 선수들의 표정과 몸 동작이 다 다르다고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쳐다보는 것도 큰 재미라고 한다.
뛰는 사람들은 길가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이 다르다. 손뼉을 치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많지만 묵묵히 하나하나 지나가는 선수들을 관찰하는 사람도 있다. 그 중에서 어린 아이들은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한지 유심히 쳐다본다. 부모 옆에 가만히 서있는 아이들이 있고 긴 팔을 뻗고 손뼉 쳐주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다. 몸을 움직이며 자기도 뛰고 싶은 욕망이 보이고 언젠가는 꼭 도전해 보겠다는 각오도 하는 것 같다. 떨어지는 낙엽이 바람에 나풀거리면서 선수들을 맞이한다. 센트럴파크 한 바퀴를 돌아 노래와 함성이 울려 퍼지는 곳이 보인다. 마지막 힘을 쏟아야 하는 언덕이다. 그렇게 6시간 15분을 달렸더니 부상으로 큰 완주 메달이 목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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