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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교차로] 살아남은 자들의 노래

이기희 / 윈드화랑 대표·작가

새벽은 다가오고 아침은 열려진다. 물안개 젖은 이국의 하늘과 뭍이 아직도 잠을 덜 깬 잿빛 강을 품으며 연분홍 물감을 하늘에 풀고 있다. 어둠과 빛은 원래 하나 였을까. 생명과 죽음, 빛과 어둠, 전쟁과 평화가 생을 판가름 짓게하는 투전꾼이 던지는 동전의 양면인 것처럼. 집 떠나온지 하루 반 나절 나는 지금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호치민시티 메콩강 앞에 서 있다. 강은 뼈저린 전쟁의 상흔을 딛고 민족끼리 총을 겨누던 이념과 피의 흔적을 지우며 묵묵히 내일의 역사로 흐른다.

'호치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7'가 호치민시 심장부 응우엔후거리 특설무대 에서 열린 개막식(한국시간 11월 11일 오후 9시)을 선두로 다음달 3일까지 23일간 호치민 시내 전역에서 열린다. 한국과 베트남 양국간의 전통과 역사를 상호 존중하고 이해함으로써 아시아 공동번영의 목적에 동참하는 행사의 일환이다.

30개국이 참가한 이 행사에는 K-pop 공연, 한.베트남 패션쇼, 미술 교류전, 경제 및 학술회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호치민 오페라 하우스에 오르는 베트남 리 왕조의 마지막 왕자 리롱뜨엉(Ly Long Tuong.이용상)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800년의 약속'은 한국과 베트남의 인연을 감동있게 선보인다. 호치민 시립미술관에는 '한-베 미술교류전' 회화.공예.민화.자수, 누비 등 한국과 베트남의 대표 작가 250여 명의 작품 350여 점이 전시된다.

문화는 역사를 선도한다. 무력으로 한 나라를 정복하고 멸망시킬 수는 있지만 민족의 문화를 송두리째 뿌리 뽑을 수는 없다. 월남전을 승리로 이끈 구찌에 가면 점령은 할 수 있지만 정복할 수 없는 민족의 강인한 생명력을 볼 수 있다.



처절한 전쟁의 역사현장이 되기 전까지 열대식물과 고무나무가 울창한 구찌는 휴일 나들이를 즐기는 평화로운 마을이였다. 월남전은 당시 미국의 지원을 받은 월남이 전력면에서 절대적인 우위에 있었다. 최신 장비를 갖춘 미군의 B52 폭격기는 27톤이 넘는 폭탄을 싣고 700회가 넘는 출격과 70km의 융단폭격으로 베트남을 초토화 시켰다. 그런 열세를 딛고 1975년 호치민이 이끄는 북부의 월맹은 사이공(현 호치민시)을 함락시키고 통일을 이루게 된다.

왜 였을까? 장장 250km가 넘는 구찌 터널 땅굴 속으로 들어가 보면 신출귀몰 했던 역사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땅굴 1층은 사령부 비롯한 지휘부, 2층은 병사들 숙소, 3층은 대피통로로 연결된다. 나뭇잎을 덮어 위장한 입구는 체구가 작은 월남사람들에게 맞도록 좁게 파여있어 미군은 들어갈 엄두로 못낼 판국이다.

아! 깊게 파인 함정 아래 대나무를 날카롭게 깍아 박아둔 죽창, 함정에 빠지면 비참하게 죽는다.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그 많은 목숨들이 죽고 죽이고 죽어갔을까. 구찌 터널에 가면 그 해답이 있다. 흑백으로 제작된 구찌 사람들의 당시 투쟁을 담은 영상기록물 속에 웃는 순진한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를 보면 구찌사람들이 지켜낸 것은 평화가 아니라 목숨보다 소중한 사랑하는 내 가족과 내 이웃, 고향이란 것을. 선전용으로 제작된 흑백의 영상물의 마지막은 천진한 아이들은 노래로 끝맺는다. 어떤 위대한 이데올로지도 첨예한 무기도 가족과 고향 위해 목숨걸고 사수하는 생의 끈질긴 희망을 끊지 못한다.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구찌의 아이들은 노래한다. 그들의 노래는 '전쟁의 승전가'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이 바치는 '고향의 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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