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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책] 세계인, 가즈오 이시구로

김은자 / 시인

일본계 영국인 가즈오 이시구로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아이들을 미국에서 낳고 키운 이민자 엄마로서 나는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에 의미를 둔다. 사람들은 이시구로의 문학세계보다 정체성에 호기심을 보였다. 어떤 이들은 그가 일본인이라고 말하고 또 어떤 이들은 일본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슬프지만 그가 일본인인지 영국인인지 잘 모르겠다고 답한 일본인도 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영국 국립 해양학연구소 직원인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이민을 간 이민자다. 우리들의 이민 2세들처럼 어린 시절부터 그곳 문화를 자연스럽게 배우며 자랐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일본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영국에서 자란 탓에 일본 문학의 영향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 역시 일본 문학을 잘 아는 편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노벨문학상 발표 직후 자택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나는 영국에서 자랐지만 내 안에는 항상 일본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집안에서는 가족들과는 일본어로 대화했고 그 때문에 일본인으로서의 관점과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고 자신 있게 밝혔다.

나는 그가 자란 환경을 쉽게 그려 넣을 수 있었다. 우리들의 2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그렇게 자랐을 것이다. 집에서는 모국어를 하고 밖에 나가서는 그 나라의 언어를 말하면서, 집에 들어 올 적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오면서 친구 집에 갈 때는 신발을 신고 방에 들어갔을 것이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이민자들에게는 희망이다. 이민자로서 정착한 곳의 언어를 습득해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역사를 새로 쓰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그의 수상은 우리들의 2세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들은 가즈오 이시구로가 일본인이 아니라고 한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너는 한국인이다'라고 가르쳤다. 만에 하나 내 아이가 세계 역사에 기여한 일로 수상을 하게 되었을 때 고국에 있는 한국인들이 '너는 미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인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어떨까? 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노벨상은 출생지를 기준으로 하는 상이므로 그는 일본인으로 분류되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에 이어 세 번째로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아 기쁘다며 스스로 일본인임을 자인했다. 자신의 예술적 근원은 일본이었고 일본인으로서의 뿌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웬일인가? 막상 일본에서는 그에게 문화훈장을 서훈할지 논란이 뜨겁다고 한다. 일본 태생이지만 영국에서 50여 년을 살았고 귀화한 그가 일본인인지 아리송하다는 말이다.

이쯤 해서 우리는 '세계인'이라는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들을 한국말로 번역한 김남주 번역가는 그가 일본 태생이긴 하지만 크게 보면 '세계인'에 가깝다고 했다. 세계인… 일본인이냐 영국인이냐도 중요하지만 다문화된 세상에 살면서 이제 우리는 '세계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가즈오 이시구로를 "소설의 위대한 정서적 힘을 통해 인간과 세계의 연결이라는 환상적 감각 아래에 묻힌 심연을 발굴해온 작가"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의 문학적 업적 중 '세계의 연결'이라는 말에 나는 가슴이 뛰었다. 한국인의 피를 물려받은 우리의 2세들이 해야 할 일이 바로 그 일이기 때문이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어떤 면에서 일본인으로서 일본을 일본에 가두어 두지 않은 작가다. 그것이 자의든, 혹 이민으로 의한 타의든 그는 일본인을 세계인으로 부각시킨 작가다.

그의 말처럼 세계는 점점 문화적.인종적 배경이 섞인 재미있는 균일 혼합체(funny homogeneous mixture)가 되어 가고 있다. 한 이민자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희망을 본다. 그늘 속에서 환한 미래를 점쳐 본다. 우리들의 2세들, 희망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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