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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유쾌한 상대성을 위하여

오민석 /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 영문학

프랑스 작가인 모리스 블랑쇼는 문인들뿐만 아니라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등 현대 철학을 주도하고 있는 수많은 사상가들에도 큰 영향을 끼친 이론가다. 한국에서도 그는 많은 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그의 글은 매우 난해하지만 새로운 사유의 공간을 끊임없이 열어젖히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에 의하면 글쓰기란 "언어를 매혹 아래 두는 것"인데, 블랑쇼 자신이야말로 언어를 매혹적인 사유의 극단으로 몰고 간다. 지적인 도전을 받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개인적인 독서사(史)의 어느 시기에 그를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다.

그는 68혁명 당시에 잠깐 나타난 것을 제외하고 2003년 사망할 때까지 철저히 은둔생활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블랑쇼 연구자들에 의하면 그는 강연도, 강의도, 인터뷰도, 공식적인 논쟁도 거의 한 적이 없다. 그는 심할 정도의 '자발적 은둔'을 하면서 오로지 글쓰기에만 몰두했다. 심지어 그와 관련된 사진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혹자는 그의 은둔이 건강 때문이었다고도 하나, 어쨌든 그것은 매우 독특한 것이어서 그의 사상과 관련해 신비화되는 경향조차 있다. 그의 은둔과 관련된 다양한 해석 중 특별히 주목을 끄는 것은, 그의 은둔이 자신이 권력화되는 것에 대한 저항의 한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문학과 예술, 그리고 철학과 인문학이 모든 형태의 권력과 권위에 대한 도전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 주체 역시 그 도전의 대상에 당연히 포함돼야 할 것이다. 가장 위험한 일은 본인이 권력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면서 바깥의 권력만 비판하는 것이다.

권력화의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는 집단은 유명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 학자, 법조인, 군인, 연예인, 문인, 예술가 등의 '공인'들일 것이다. 그들은 시스템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권력을 부여받는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세상이 자신들을 '로 앵글'로 올려다볼 때, 그들은 저 높은 '하이 앵글'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습관을 자신도 모르게 체득하게 된다. 득의만만한 태도가 온몸에 가득할 때, 자아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실제보다 훨씬 과장된 '가짜 자아'가 자신의 주인이 된다. 자신을 더 커 보이게 해서 상대방을 위압하며 허세를 부리는 것을 속된 말로 "후까시 넣었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후까시는 일본어 "찌다(蒸)"의 명사형이다. 어깨에 '후까시'가 많이 들어갈 때 주체는 퉁퉁 부어오른 가짜가 된다. 얼마 전 (웬만한 사람이면)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어떤 분을 만났다. 그는 직업상 불가피하게 우리 사회의 대표적 공인들을 수십 년 동안 접촉해왔다. 그는 이 오랜 교제의 경험을 통해 한 가지 반복되는 패턴을 보았다고 한다. 목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그 권력은 오래가지 못하더라는 것이었다.

권력은 타자의 외재성(外在性)과 단독성을 부정하고 타자에게 자신의 동질성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폭력적이다. 공인들뿐만 아니라 가정을 포함한 모든 관계와 조직에서 권력이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런 폭력성 때문이다. 훌륭한 공동체는 특정 주체가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직능을 합리적으로 분배할 때 생겨난다. 부모와 자녀, 선생과 학생, 사장과 직원의 관계 또한 지배와 종속, 즉 권력의 관계로 포섭될 때 소모적이고도 치명적인 분란이 발생한다.



공동체가 탈(脫)권력화되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살아날 때, 평등하고도 효과적이며 평화로운 공동체가 생겨난다. 구성원 중 그 누구도 주변화되거나 억압되지 않는 상태, 그리하여 "유쾌한 상대성"(미하일 바흐친)이 최고조로 구현된 상태야말로 바람직한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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