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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좌우 대칭

조성자 / 시인

시계 바늘은 12시부터 6시까지는 우파로 돌다가/ 6시부터 12시까지는 좌파로 돈다/ 미친 사람 빼고/ 시계가 좌파라고, 우파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바빠도 벽에 걸린 시계 한번 보고 나서 말해라// (...)시계바늘도 세수도 구두도 스트레칭도/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세상은 돌아간다/ 벌써 구두의 한쪽은 좌파이고 또 다른 쪽은 우파이다/ 그렇게 좌우는 홀로 가는 게 아니다/ 게다가 지구는 돈다

-김승희 시인의 '좌파/우파/허파' 부분



해물잡탕을 먹는다. 메뉴판 아래 원산지 표시가 있다. 꽃게는 미국산, 아귀는 베트남산, 명태는 러시아산, 홍합은 호주산… 세계가 참 막역하다. 한 접시에서 조우하는 세계, 세상이 상부상조하며 화기애애하다.



음식뿐인가 독일제 샴푸로 머리를 감고, 영국제 크림을 바르고, 프랑스제 향수를 뿌린 아침, 일본이 생산한 차를 타고 출근을 한다. 에티오피아산 커피로 잠을 쫓고 중국제 차를 마시고 미팅을 한다. 음식을 만들다가 양념이 떨어지면 이웃집으로 뛰어가 얻어다 쓰는 모습 같다.

세계가 좁아진 것은 서로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탓이다. 필요가 필요를 찾아 나서면 그것이 협력이 되는 것 아닌가. 신토불이라는 자급자족의 미덕을 벗어난 건 먹거리 뿐만은 아니다. 삶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모든 분야에서 세계는 아주 가까워졌다.

세계가 이렇게 다정해지는 동안 내부는 극명하게 분할이 된 것 같다. 이념이라는 구닥다리 양복은 이미 중고품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데도 우리는 그 사라진 이념을 사모하는 것인지, 그리워하는 것인지 여전히 분할의 푯대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좌로만 간다면 시계는 이미 고장이 난 것이다. 몸이 우로만 기운다면 그 몸체는 이미 골반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좌우란 하나의 형체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불가분일 뿐이다. 좌우란 건강한 몸체를 지탱하기 위한 평형의 기반일 뿐이다.

'좌파란 진보적이거나 급진적인 정치관을 갖고 동맹을 맺는 사람들로 과거의 체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고 평등과 국가 개입을 지향한다'라는 게 사전적 의미다. 그렇다면 우파란 그 반대가 될 것이다. 어느 나라나 변화를 지향하는 세대가 중심이 되면 자연적으로 기존의 체제를 타파하려는 요구가 강해지고 원하던 원하지 않던 변화의 물결이 거세지게 마련이다.

좌파는 역사적으로 혁명의 주동세력이 되어왔고 가난과 불평등 같은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입장이었다. 사회가 유독 좌파니 우파니 하면서 극명하게 갈라지는 현상은 현 체제를 지키고자 하는 기득권자들과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들과의 사이에 골이 너무 깊다는 말이기도 하겠다.

좌파니 우파니 하는 단어에 심기가 불편하고 무서워지는 것은 한국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일뿐더러 유일하게 남아있는 공산독제체제 국가인 북한이 형제국인 탓이다. 요즘 여러모로 한반도가 불안하다. 작지만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반도에 북쪽에선 입에 담기도 험한 가공할만한 무기들이 생산되고 남쪽에선 방어를 위해 더 힘이 센 무기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 가을 어딘가에는 코스모스가 흐드러질 것이고 어느 산기슭에는 산국화가 청초하게 피어나고 있을 것인데, 오랜 세월 시대의 바람에 골절상을 입고도 끄덕 않던 땅인데, 아프면서도 흥겹게 노래할 줄 알던 사람들의 터전인데, 요즘 시끄러워 정신이 사납다.

'좌'는 '우'가 구태에 빠질 때 경각심을 일깨워 줄 나팔이 되고, '우'는 '좌'가 공정성을 잃고 날뛸 때 평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겨드랑이를 지긋이 당겨주는 척도여야 하지 않을까. 좌편에 혹은 우편에 서기도 하겠으나 그뿐, 좌파든 우파든 세상을 숨 쉬게 하는 허파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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