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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칼럼] 삶의 길목에서 어둠을 만날 때


다시금 새해, 나무의 나이테처럼 반복되는 일인데도 올해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뒤숭숭했다. 마치 긴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꼭 지켜야 했던 무슨 약속을 잊은 사람처럼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했다. 갑자기 찾아온 강추위 때문이려니 하면서도 내심 늙어가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난 연말 지인의 장례식에 함께 갔던 친구가 오랜만에 전화했다. 지병으로 고생했던 지인 생각이 나서 한동안 우울했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나를 초조하고 불안하게 했던 그 감정이 바로 상실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생로병사’란 사람이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과정인 만큼 모두에게 공평해야 할 것 같은데,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다. 한창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젊은이의 죽음이 더 애달픈 이유도 그 때문인듯하다.

나는 인생의 마지막 과정을 남들보다 많이 대하며 살았다. 그 경험은 죽음에 대해서 담담할 수 있도록 나를 단련시키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도 알게 해 주었다. ‘죽음’에 포커스를 두는 것보다는 ‘삶’ 쪽에다 초점을 맞추고 살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도 모두 그 덕분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에이미 크라우스 로즌솔이라는 미국 동화작가가 있다. 남편의 새 아내를 찾는 내용의 칼럼을 써서 뉴욕타임스에 써서 화제가 되었던 사람이다. 말기 암과 투병하며 시한부 삶을 보냈던 그는 26년을 함께한 남편에게 밸런타인스데이 선물로 새 동반자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에서 ‘내 남편과 결혼할 분을 찾아요(You May Want To Marry My Husband)’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그렇다. 떠나는 이가 바라는 것은 오직 남은 사람의 행복이다.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나 역시 스스로 믿지 못할 만큼 예상하지 못했던 생각을 했었다. 혼자 될 남편의 걱정이 먼저 다가왔었다. 교회에 가면 싱글인 사람 중에 “누군가 남편에게 좋은 짝이 될 사람은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마음을 겪어보았기에 나는 유족들의 슬픔을 위로하기보다는 빨리 극복하는 것이 고인이 원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얼마 전 식당에서 마주친 선배에게 무심코 안부를 물었다가 3개월 전에 남편을 여의었다는 대답을 듣고 당황했었다. 그저 앞날이 캄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그 선배의 말처럼, 남편의 죽음은 삶의 의욕을 잃게 할 만큼 큰 사건이다. 갑작스러운 이별의 슬픔은 삶의 뿌리를 흔들어대고, 고인의 빈 자리를 서성이다 보면, 내가 원했던 삶의 모습과 너무나도 다른 지금의 내 모습에 절망한다.

며칠 전, 내 핸드폰에 남아있던 지인의 카톡으로 고인의 아내가 인사를 보냈다. 장례식에 오셨던 분들의 사랑이 너무 고마워서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내용이다. “그냥 내 곁에 있기만 해도 되는 데, 그냥 가버렸어요.” 하며 가슴에 기대서 울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 한가운데가 뻐근하다. 내가 어찌 감히 남편을 잃은 큰 슬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만, 인생 역경의 주름살 아래에는 더 깊고 진실한 인생이 있다는 것을 그의 아내가 알았으면 좋겠다.

살다 보면 삶의 길목에서 어둠을 만날 때가 있다. 그 어둠을 뚫고 나갈 건지, 바라보고만 있을 건지 결정하는 일은 나 자신의 몫이다. 그러나 어떤 빛도 찾으려는 노력 없이 어둠 속에 주저앉기 전에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은 날 사랑했던 이가 절실하게 원했던 시간이라는 것을.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는 떠나간 사람이 간절하게 머무르고 싶었던 곳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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