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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대한미국'의 꼬부랑말

한국신문을 읽다가 '워라밸'이라는 낱말에서 급정거했다. 어라, 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 우리말인가? 이리저리 찾아보니 Work and Life Balance의 줄임말, 그러니까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신조어란다. 이런 식이다. "현재 한국인의 삶이 워라밸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직장인은 단 9.5%에 불과했으며, 본인의 삶이 워라밸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이와 비슷한 말인 '바브밸'은 몸(바디)과 뇌(브레인)의 균형을 뜻한단다. 아, 정말 어렵다.자세히 살펴보니, 이런 것 말고도 정체불명의 아리송한 꼬부랑말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다. 아, 너무 힘들어서 대한민국 국민 노릇 못해먹겠다!

텔레비전을 봐도 꼬부랑말이 너무나도 태연하게 난무한다. 철없는 꼬맹이들도 순박한 시골 할머니들도 세련되게 꼬부랑말을 날린다.

"지금은 영어가 우리말 속에 들어와 약 절반 가량의 언어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 말글은 점점 더 사라져가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것이 '대한미국' 오늘의 현실이다. (아, '대한미국'이라는 낱말은 방송인 김형준 씨가 오래 전에 발간한 책의 제목이다. 매우 절묘하게 상징적이다.)



물론 세상이 달라지면 말도 바뀌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명색이 지식인이 우리말 신문을 제대로 못 읽을 지경이라면 이건 너무하다. 문제는 말과 글이 바뀌면 사람의 생각도 변한다는 점이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그렇게 된다. 구멍가게가 수퍼로 바뀌고, 고기구이집이 가든으로 단장하는 동안 우리의 머릿속도 라면 가락처럼 꼬불탕꼬불탕 뒤엉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정말 '대한미국' 국민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영어가 한국인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현상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80년 전인 1937년에 발간된 '모던조선외래어사전'에는 "요새 신문에는 영어가 많아서 도모지 알아볼 수가 없다"는 세간의 불평이 인용돼 있다고 한다. 이렇게 열성적으로 꼬부랑말을 써서 정말로 영어를 잘하게 된다면, 그나마 좋은 일이겠지만, 온통 한국식 엉터리 영어 콩글리시 범벅이니 문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만 엉터리 영어를 쓰는 것은 아니란다. 스페인어식 영어는 스팽글리시, 일본어식 영어는 재플리시 또는 쟁글리시, 싱가포르식 영어는 싱글리시, 프랑스식 영어는 프렝글리시, 독일어식 영어는 뎅글리시, 인도식 영어는 힝글리시라고 한단다. 그런 말을 들으니 그나마 조금 안심이 된다.

더 반가운 이야기도 있다. '한국어 속에 숨어있는 영어 단어 이야기'라는 책을 펴낸 조지은 옥스퍼드대 교수에 따르면, "콩글리시는 미래의 잉글리시"라고 한다. 조 교수는 하루에도 수많은 영어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흥미진진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콩글리시 단어들이 펼쳐 보이는 삶은 바로 우리의 삶이다. 우리의 삶을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소위 한국제 영어 단어들인 콩글리시 단어들을 잘못되었다고만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조 교수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영어 신어가 영미권에 수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단다.

아, 제발 그 말씀이 맞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빈다. 아울러, 프랑스 사람들은 왜 자기 나라 말과 글을 지키려고 그렇게 기를 쓰는 것인지, 그것이 알고 싶다.


장소현 / 극작가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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