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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무턱대고 한국사 시험보다

권소희 /소설가
권소희 /소설가 

[LA중앙일보] 발행 2018/09/11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8/09/10 18:28

덜컥. 신청을 했다. 한국사 시험을 보겠다고. 뜨악해하는 식구들의 표정에 나도 뒤통수를 긁었다. 처음부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맨 처음에는 오히려 나도 의아했다. '미국에서 한국사 능력평가라니? 그리고 한 달이 지나선가, 내 예상대로 지원자가 저조한지 신청 기간을 연장한다는 기사를 다시 보게 됐다.

'어! 정말 신청하는 사람이 없나 보네?' 나라도 신청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왜 그리 강렬했던지. 나는 마치 뭔가에 홀린 것 마냥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본인이 직접 와야 한다기에 사진 한 장 들고 직접 LA한국교육원으로 갔다.

신청을 해놓았으니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실시했던 한국사 중급 문제지와 답안지를 인터넷에서 내려받고 문제를 맞혀보았다. 가물가물하게 옛 기억이 떠오르긴 했지만 모르는 문제는 절대 답이 맞질 않았다. 전체를 이해를 하지 않으면 답을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많은 문제를 달달 외울 수도 없지 않은가. 60점 이상이면 수료증을 준다는데 내가 획득한 점수는 50점에서 맴돌았다.

극단의 조치로 책꽂이에서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책을 꺼냈다. 그 책은 대학입시용 국사책이다. 제목도 '독학 국사'다. 그 책에는 얽힌 일화가 있다. 15년 전에 한국 역사를 심도 있게 공부하고 싶어서 아는 지인 부탁했더니 그 책을 사 온 것이다.

'아니! 내 실력을 무시해도 그렇지. 이건 대입을 치르기 위해 고3 수험생들이 보는 참고서 아냐?' 화가 나서 책꽂이에 꽂아놓고 한 번도 읽질 않았던 책이다. 새 책이니까 아까워서 버리진 못하고 끼고만 있었던 책을 펼쳤다. 뗀석기니 빗살무늬 토기니 예전에 외웠던 기억이 가물가물 살아나는 듯싶었다. 그런데 워낙 분량이 많다 보니 한 번 눈으로 훑는 건 지식이 되질 못 했다.

고민이 됐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 시험 날짜는 2주도 채 안 남았다. 난감했다. 조선 시대는 아예 넘어가지도 않았는데 고려 시대부터 뒤죽박죽 엉키기 시작했다. 공부에는 지름길이 없는 것 같다. 종이를 꺼내 차근차근 적어갔다. 왕별로 치적 사업을 정리하고 토지법, 군사, 행정조직을 분야별로 따로 정리를 했다. 빨간 펜으로 줄을 긋고 파란 펜으로 별을 표시하니 한민족이 치렀던 수많은 전란들이 차곡차곡 정리가 됐다.

50점을 밑돌던 점수가 70점대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수료증은 받을 수 있겠구나' 자신감이 붙었다. 하지만 에누리 없이 흘러간 시간은 어느새 코앞에 닿았다. 진즉 신청을 빨리할 걸, 진즉부터 눈으로 읽지 말고 오감을 동원해서 외울걸. 별별 후회를 해도 이젠 손을 놔야 했다.

시험장에 들어서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책상 앞에 있었다. 다들 마지막 한 문제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문제지를 들춰보고 있었다. 나도 울긋불긋 일목요연하게 요약한 종이를 펼쳐서 마지막으로 전체를 훑었다. 마치 뿌옇게 낀 수증기를 걷어낸 기분이랄까. 성인이 돼서 한국사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한국 정부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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