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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아들 딸 낳고 잘 살았더라

아침 저녁 날씨가 차다. 요즘들어 부쩍 옛날 일을 생각하는 시간이 잦아진다. 나이 탓인가.

1945년 해방이 되었지만 그 때는 너무 어려서인지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1950년에 일어난 6·25는 9살 꼬마에게도 여러가지 기억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시골로 피란가서 오빠 따라다니며 메뚜기도 잡고 남의 집 잘 익은 콩을 뿌리째 뽑아 오빠 친구들과 구워먹고 입이 새까만 채로 집에 들어와 엄마에게 혼이 나기도 했었다. 그땐 학교 안 가고 놀러 다니는 것이 좋기만 했다.

그후 겨울 피란(1·4 후퇴) 때는 엄마가 조그만 '리쿠사쿠'를 내 등에 달고 다니게 했다. 그 속에는 아기 기저귀, 돈 등 필요한 용품이 모두 들어있었다는데 엄마는 어떻게 어린 나에게 그 귀중한 것을 맡겼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언니 오빠는 다른 짐을 들었고 엄마는 업고 손 잡은 동생이 둘이나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피란지 대구에서 1년 정도 살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와 초등학교 4학년으로 들어갔다. 공부를 잘했고, 6학년 때는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동시가 입상해 동아일보 어린이 란에 실리기도 했다. 그 때 어머니는 딸 이름이 신문에 났다고 아주 좋아하시며 신문을 들고 자랑하고 다니셨다.



25살에 결혼해서 직장 생활하며 3남매 키우다가 45세에 미국이란 나라에 홀려 이곳에 뿌리내린지 32년. 손자를 7명이나 둔 할머니가 되었다. 남의 나라에 와서 터잡고 살려니 얼마나 힘이 들고 사연이 많았을까마는 모두 그렇게 사는가보다 하고 열심히 살았다.

뒤돌아보니 77년 세월이 TV연속극 1회에 다 나올만큼 짧았던 것 같다. 둘이 손잡고 시작해 15명의 가족을 이루었으니 우리는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힘들었던 모든 일들도 지나고 보니 행복의 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나의 인생은 그런대로 괜찮았던 것 같다.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너무나 행복하고 소중하다.


정현숙 / LA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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