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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환 교수의 자녀양육 칼럼: 미키의 안락사

집사람이 한국 방문길에 오른지 열흘이 됐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빈 집이 더욱 텅 빈 듯한 느낌이다. 집사람의 출국 전날에 12년간 키워온 애완견을 안락사시켰기 때문이다.

2006년 시추를 한 마리를 얻어 미키라고 불렀다. 사실은 미키 2였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식구들의 요청에 못이겨 시추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다. 가족회의를 통해 강아지의 이름을 미키라고 지었다. 2006년 초 미키를 다른 가정에 주고 우리 가족은 한국에 가서 잠시 생활했다. 한국에서 돌아와 1년 6개월 된 강아지를 얻었다. 역시 시추였다. 식구들이 이름을 정하기 위해 상의하다가 전에 길렀던 미키에 관한 추억을 생각하며 다시 미키로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식구들은 미키를 가족의 일원으로 여겼다. 마치 갖난아이를 대하듯 했다. 때에 맞추어 음식과 물을 챙겨주고, 패드를 갈아주었다. 털과 발톱도 손질해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이빨도 닦아주었다. 건강관리를 위해 필요한 약도 이따금씩 먹이고 뿌려주었다. 어쩌다 토하기라도 하면 걱정하며 음식을 조절해 먹였다. 출타할 때도 미키 때문에 너무 늦지 않게 귀가해야 했다. 장거리 여행을 할 때는 데리고 가고, 데리고 갈 수 없을 때에는 누구에겐가 맡겨 놓았다. 미키를 돌보는 것은 주로 집사람의 몫이었지만, 집사람이 집에 없을 땐 내가 돌봤다.

미키도 자기가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식구들이 소파에 앉아 있으면 소파로 올라오고, 식사시간에는 식탁 밑에서 맴돌며 음식을 기다렸고, 밤에는 우리 내외의 침대에서 함께 잤다.



나는 동물은 어디까지나 동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키도 데면데면하게 대했다. 그래도 미키는 내가 저녁에 집에 돌아가면 현관에서 꼬리를 흔들며 맞아주었고, 나는 대개 건성으로 인사를 했다. 요즘은 건성으로나마 인사할 상대가 없어져서 빈 집이 더 썰렁하게 느켜지는 것이다.

안락사를 결정하기 며칠 전부터 미키는 피 섞인 위액을 토하며 설사를 할 뿐만 아니라 음식을 안 먹었다. 집사람이 며칠 밤을 세워 간호했지만, 14살이 된 것을 고려할 때 회복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결국 토요일 아침에 안락사를 결정했다. 애완동물 용품을 파는 가게에 있는 동물병원에 전화해서 오후에 수의사를 만나기로 약속했다.

화상전화를 통해 휴스톤에 있는 아들과 씨애틀에 있는 딸에게 안락사를 결정한 사실과 결정의 이유를 알려주었다. 아들은 슬픔을 꾹꾹 삼키면서 작별인사를 했고, 딸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식구들은 가족단톡방에 미키의 축 늘어진 현재 모습과 과거에 활발했던 모습을 짠뜩 올렸다.

드디어 오후에 약속시간이 되어 수의사를 찾아갔다. 접수담당자가 4번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집사람은 미키가 죽는 것을 도저히 볼 수 없겠다고 해서 나 혼자 미키를 안고 안내받은 방으로 들어갔다. 조그만 방이 여느 의사의 진료실처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잠시 후 접수담당자가 들어와 비용과 절차에 관해 안내해주었다.

잠시 후 접수담당자가 말한대로 하얀가운을 입은 테크니션이 들어와 안락사 준비를 갖추었다. 전기이발기로 오른쪽 앞발의 윗부분에 있는 털을 밀었다. 주사기를 꽂을 수 있는 도관을 혈관에 삽입했다. 미키는 발목이 따끔했는지 다리를 살짝 움츠렸다. 테크니션은 도관이 빠지지 않도록 테이프로 꼼꼼하게 감아 놓고, 물 같이 보이는 액체를 주입하여 도관이 제대로 삽입됐는지 확인하고 나갔다.

곧이어 의사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목에 두른 수의사가 여러 대의 주사기를 들고 들어왔다. 엄숙한 자세와 말투로 위로의 인사를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혈관을 씻어내고, 수면제를 주사하고, 안락사를 위한 약을 투여하겠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리고는 순서에 따라 주사를 놓았다. 먼저 맑은 용액을 주사했다. 수면제를 주사하자 미키는 눈을 감고 고개를 살며시 떨구었다. 마지막으로 분홍색 프로포폴 액체를 주사했다. 그러자 몇 초도 되지 않아 심장박동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평소에도 짖지 않던 미키는 신음소리 한 번도 내지 않고 죽었다.

집사람과 나는 병원비 43.95불, 화장비 18.75불, 안락사비 120불, 그리고 의료폐기물 처리비 3.60불을 포함한 전체비용 186.30불을 지불하고 허전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를 안락사시키는데 드는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애완동물 용품을 판매하는 체인점에 있는 동물병원이었기에 비용이 그 정도지 개인이 운영하는 동물병원이라면 더 비싸다고 한다. 또한 개를 개별적으로 화장하면 화장비는 대개 50불 내지 150불 정도인데, 우리는 집단화장을 선택했기 때문에 비용이 덜 들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미키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아이들이 학교 갔다 돌아오면 미키가 제일 먼저 반겨주었다. 아이들은 화나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 미키와 놀며 위로를 받고 잊었다. 미키 돌보는 일을 분담하면서 책임감을 키우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커서 멀리 떨어져 살게 된 후로도 집에 돌아오면 여행가방을 내려 놓자마자 미키와 마주 앉아 한참씩 장난을 쳤다. 아이들은 오랫동안 미키를 그리워할 것이다.

내가 학교에 가면 빈둥지에 혼자 있는 집사람에게 미키는 하루종일 충실한 동반자였다. 집사람은 정을 떼기가 너무 힘들어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고 하고 한국 방문길에 올랐다. 그런 마음이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겠다. 돌아오자마자 새로운 강아지를 구하자고 할 것 같기도 하다.

미키를 늘 무뚝뚝하게 대했던 나도 매일 저녁 현관문을 열며 무의식 중에 미키가 있던 자리를 보게 된다. 오늘 저녁에도 나도 모르게 미키 자리를 보며 가슴 한 구석이 비어 있음을 새삼 느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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