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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벌써 일 년'…미국은 달랐다

김영환 / 라크레센타
김영환 / 라크레센타 

[LA중앙일보] 발행 2019/01/18 미주판 23면 기사입력 2019/01/17 19:22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딱 일 년 전이다.

LA공항에 내려 입국수속을 어떻게 할지 몰라 주위를 살폈다. 마중 나온 사람의 동네에 정착한다는 속설을 정설로 만들 듯, 나도 마중 나온 지인의 근처에 집을 정했다.

겨우 운전면허를 딴 날은 내 인생의 변곡점이었다.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미국 생활은 운전면허증을 가지기 전과 후로 명백하게 나누어진다. 작은 물건 하나 사려고 기름값 날리며 차를 타야 하니…. 시동걸 때 '부르르' 떠는 엔진 소리가, 내 안타까운 마음의 떨림이었다.

미국은 협상·거래(deal)의 사회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딜을 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깎아 달라고 말하는 것과 딜은 조금 다르다. 깎는 것은 그냥 요구하는 것이고, 딜은 어떤 근거를 가지고 상호 합의점 즉 윈윈(win-win)을 찾는 과정이다.

집을 렌트할 때 주인에게 장기 계약을 하겠으니, 냉장고를 새것으로 바꿔달라고 했다. 주인은 1월에 사면 냉장고가 비싸니 5월 메모리얼데이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 '~하겠으니, ~해달라'는 딜은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 내 요구 사항을 얻기 위해 뭔가를 하겠으니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과정이다.

미국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웠다. 한국 사람이 가장 두려운 것은 타인의 시선이다. 내가 입은 옷, 내가 타는 차량, 내가 사는 집에 대한 내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타인의 시선이 내 생각을 움직인다. 그래서 좋은 것, 비싼 것을 산다. 내 만족 이전에 타인을 의식하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은 지옥"이라고 한 장 폴 사르트르 말을 떠올리면서, 한국에서 떠난 것을 실감하고 있다.

회사에 백발의 중년 분들이 많이 있다. 대부분 염색을 잘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50대의 직원에게 "염색 안 하세요" 물으면, 나오는 답은 "여기 미국인데요. 뭘" 한다. "자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권리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라고 한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이 맞다. 미국은 태초부터 자유에서 잉태한 것을 느낀다.

미국은 월 단위 삶을 사는 것도 한국과는 많이 달랐다. 내가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렌트다. 대부분의 렌트 비용은 월 단위로 지급된다. 이번 달 월급을 받아 이번 달을 살기에 LA시민 중 월급을 받지 못하면, 400달러도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이 40%라는 말도 있다. 1년 단위가 아니라 한 달 단위로 살아가기에 미국인의 생활은 불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일한다면 다음달 월급이 나온다는 믿음이 미국을 굳건하게 움직이는 동력으로 보였다.

예측 가능성이 높은 나라가 선진국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수십 년을 한국에서 산 나로서는 깎아 달라는 말도 어려운데 사실 딜은 더 어렵다. 하지만, 1년을 살아보니 집 주인에게 오래된 환풍기를 고쳐달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청바지로 출근하고, 집세는 늘 먼저 챙긴다. 어느새 나도 점점 미국인이 되어 가는 모양이다.

오늘 아침 아내가 옷을 색깔 맞춰 입고 출근하라고 한다. 나도 모르게 나온 말, "아무도 신경 안 써." 여긴 미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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