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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네트워크] 'SKY 캐슬'의 이무기들

"나 보고 천벌 받을 년이라고 했지? 너도 영영 나오지 못할 지옥불에서 살아봐." JTBC 금·토 드라마 'SKY 캐슬'에서 나온 대사다. 모범생 아들이 살인범으로 몰린 주부 수임(이태란)에게 입시 코디 주영(김서형)이 내뱉은 말이다. 어마어마한 저주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비극적 사고로 집에 유폐된 딸 때문에 사회에 원한을 품고 사는 주영은 대입 자녀를 둔 주변 가정을 하나둘씩 무너뜨린다. 저승사자가 따로 없다.

요즘 'SKY 캐슬'이 단연 화제다. 명문대 입학을 둘러싼 상류층의 허욕과 위선을 발가벗긴다. 때론 막장 직전까지 치달으면서도 서울대 의대 합격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한국인의 오늘을 잘근잘근 씹어댄다.

드라마 속 세상은 한마디로 지옥이다. 용광로보다 뜨거운 그 불길에서 자유로운 이는 하나도 없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의사·교수 등 이른바 최고로 잘 나가는 이들이 최악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모습에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은 묘한 쾌감마저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하늘(SKY)로 솟구쳐 남들을 지배하는 용이 되려는, 그리고 그 단단한 신분을 자녀들에 고스란히 물려주려는 최상위 0.1% 부모들의 탐욕에 넌더리가 나기 때문이다.

정말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이처럼 아비규환 세상인가. 이웃에 대한 배려와 살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인가. 위험사회·단절사회·피로사회·공포사회 등 온갖 용어가 머릿속에서 춤을 춘다.



더 두려운 건 상류층의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다. 일반인은 꿈도 꾸기 어려운 성채에 모여 사는 그들은 신분 사다리가 끊긴 작금의 우리 사회를 은유한다. 외부인은 절대 들어설 수 없는 곳에서 '그들만의 게임'을 벌이는 모습이 웬만한 호러영화를 무색하게 한다.

'SKY 캐슬'은 자녀를 용으로 키우고 싶은 이들의 광시곡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온다'는 이제 속담에서나 찾을 수 있는 말이다. 갈수록 굳어지는 양극화 사회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 아이들 성적에 따라 부모들 식탁 좌석마저 결정되는 장면에선 '썩소'(썩은 미소)가 터진다. 수억 연봉의 코디 선생마저 '한번 쓰고 버리는 참고서'로 묘사된다. 용이 아닌 용이 되고 싶은 이무기들이 득실거리는 모양새다.

이 드라마는 산업화 세대의 단말마(斷末魔)를 보여준다. 성적·출세주의의 마지막 고통쯤 될까. 아직도 의사·변호사에 목매는 상류층, 그들을 좇고 싶은 보통사람들의 허망한 바람이 애달프기만 하다. 물론 출구도 있다. 가짜 하버드대생 사건으로 집안을 왈칵 뒤집어놓았으면서도 이를 질책하는 로스쿨 교수 아버지 앞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클럽 MD로 당당히 일어서겠다는 딸 세리(박유나)는 부모 세대와의 이별을 선언한다.

20세기는 노력의 시대였다. 빈한한 사람에게도 폭은 좁지만 올라갈 사다리가 있었다. 지금은 거의 사어(死語)가 된 수많은 우골탑(牛骨塔)이 2019년 대한민국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다. 학력·노력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자녀에 대한 부모의 과도한 집착이 세상을 병들게 한다. 인공지능 4차혁명을 굳이 꺼낼 필요도 없다. 자유로운 상상과 즐거운 마음이 다음 세대를 이끌 원동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신년 기자회견서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를 만들자"고 했다. '함께 잘 사는 사회'에 반대할 이는 없다. 문제는 용이 아니다. 개천을 맑고 넓게 정리하는 일이다. 대학에 안 가도 사람 구실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다져야 한다. 이무기도 좋은 물을 만나면 언제든 용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심술만 남게 된다.


박정호 / 한국 중앙일보 문화·스포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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