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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통곡의 벽

기원후 70년에 유다인들은 로마제국에 반기를 들었고, 정복자 로마는 그 유다인들을 잔인하게 진압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을 완전히 파괴시켰다. 그때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은 기원전 515년에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이 세운 소박한 성전이 아니었다. 그 성전은 헤로데 대왕으로 일컫는 건축전문가가 시작했고, 근 100년 가까운 시일이 걸려 완성된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

성전 건축에 쓰인 돌 하나의 길이가 12미터에 무게 100톤에 해당되는 것도 있었다고 하니 가히 어느 정도의 건축물이었을지 상상이 될 것이다. 당시 랍비들은 "이 성전을 보지 않고서는 아름다움에 대해 논하지 말라"고 까지 했다. 그런데 그 성전이 완공된 지 6년 만에 그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성전은 어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얹혀져 있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정복한 로마 총독 티투스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모든 유다인들을 쫓아버렸고, 유다인들은 결코 예루살렘에 들어올 수 없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단, 1년 중 유일하게 하루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해 놓았는데, 이날 유다인들은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그나마 남아있는 예루살렘 성곽 서쪽 벽면에 기대서서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며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며 돌아가곤 했다. 이때 유다인들이 기대서서 통곡하던 벽면을 '통곡의 벽'이라 일컫는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결함을 가진 피조물이다. 우리는 한밤중에 침대에 누워 끔찍하게도 이 세상에서 나만 겪는 것 같은 슬픔에 사로잡혀 당혹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통곡의 벽에서는 이런 환상이 불가능하다. 통곡의 벽은 자칫 우리가 조용히 마음속으로 견뎌야 했을지도 모르는 고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장소를 상징한다. 다른 사람이 겪는 불운, 상심, 무너진 야심, 실패, 경제적 파산처럼 평소 우리의 태연한 모습 뒤에 감춰져 있는 것들, 곧 '하느님만이 볼 수 있었던 것들'을 우리가 통곡의 벽에서 잠깐 볼 수만 있어도 그 벽은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된다. 아무런 해결책도 제공되지 않고 고통도 끝나지 않지만, 우리의 고통과 탄식 속에서 어느 누구도 혼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기에 그렇다. 통곡의 벽 앞에서 우리는 유독 우리만이 박해당한다는 환상 속에서 고민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가 이 '통곡의 벽' 역할을 할 수 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의 죄를 뉘우치고, 나 혼자만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 같은 환상을 떨쳐버려야 한다. 나아가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를 대신하여 고통받으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겠다는 신앙인의 자세를 확고히 다져나가야 하겠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머물며 어떤 상황에서든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해 주시려고 크나 큰 고난을 감내한 우리의 구세주다. 우리는 그분을 통해 '지금-여기에서' 영원의 세계와 연결됨으로, 결국 이 세상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만이 남는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루카 9,20)

park.pio@gmail.com


박비오 신부 / 천주교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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