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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성 목사의 이민과 기독교] 옛날 이민자 교회들

김대성
김대성 기자

[시카고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9/26 13:04

교실에 아시아계 학생이 들어와 있어서 말을 건넸습니다. 우리처럼 뿌러지는(?) 억양으로 대답을 하는 걸 보니 유학생이 틀림없었습니다. 베트남에서 왔답니다. 그 다음 제 질문은 “그러면 카톨릭?”이었고 그것도 맞았습니다.

개신교 신학교에는 한국유학생들이 많고, 천주교 신학교에는 필리핀과 베트남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중국계 유학생인 경우 본토보다는 싱가폴, 말레이시아, 홍콩 등지의 화교 출신이 많습니다. 모두 고국의 교회를 반영하는 일입니다.

이민자들은 고국에서 지켰던 신앙과 교회를 함께 가져옵니다. 이민자들의 나라로 불리는 미국에서는 초기부터 반복되었던 역사입니다.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영국인 이주자들은 성공회를 그대로 이식하려 했습니다. 버지니아 지역에서는 성공회 소속이 아니면 설교할 권리가 없었고 이를 어길 시에는 추방당하거나 징역의 형벌을 받기도 했습니다.

더 북쪽이었던 매사추세츠 지역에서는 청교도들이 자신들의 신앙과 교회를 가져 왔었습니다. 영국에서 박해 받던 소수였던 이들은 신대륙에서만큼은 정말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려는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자연히 기독교적 신앙 원리와 교회는 삶의 중심을 이루었습니다. 교회에 소속되어 출석하는 것이 시민권의 조건 중에 있었습니다.

천주교도들은 캐롤라이나, 퀘이커나 재세례파 등 여러 소수 종교들은 펜실베니아에 모여들었습니다. 뉴욕 지역에는 여러 나라의 이민자들이 선호하는 곳이 되어 종교적 다양성을 띠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식민지에서도 종교적 소수자들은 버지니아나 매사추세츠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주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1700년 이전부터 미국 이민자들의 종교 지형은 지역별로 전혀 다른 특색을 보였을 것입니다. 보스턴을 중심으로 한 지역은 청교도의 나라로 불릴 만했고, 버지니아 지역은 영국 성공회 교구들의 확장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뉴욕,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등의 지역에는 이민자들이 시작했던 다양한 교회들의 박물관처럼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 틈에서 천주교도들이나 유대인들도 자신들의 자리를 찾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 다양한 가운데에서도 이민자들이 가진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고국에서보다 신앙은 개인의 삶에 더욱 중요하게 되었고, 교회는 사회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청교도 지역에서는 주일에 교회를 출석하는 것을 법으로 만들 수는 없었지만 사회적으로 당연한 의무였습니다. 교회의 종소리로 시작하는 주일은 모든 일을 놓고 예배와 기도로 지내는 시간이었습니다. 두 시간에서 많게는 5시간까지 교회에서 경건하고 조용한 신앙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주일을 경건하게 보내지 못한 이들은 대중들에게 공개되거나 정부로부터 형벌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1646년에 체이스 부부는 주일에 밭에서 콩을 거두어 들여서 벌금을 내야 했습니다. 1652년에는 에디 부인은 주일에 목욕을 했다는 이유로, 같은 해 켐블 대위는 아내에게 키스를 했다는 이유로 고발되었습니다. 모두 청교도 공동체였던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아시아계 유학생을 만났을 때 그러하듯이, 초기 미국 이민자들은 어느 지역에 정착했는지를 보고 그들의 교회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국가가 통일된 교회를 가지려 했던 유럽 대륙을 떠나 훨씬 다양한 교회를 세우고 모였습니다. 다양한 중에도 신앙과 교회는 더욱 삶의 중심이 된 것이 이민교회의 특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한인 이민자들도 반복하고 있는 역사인 것 같습니다. [교회사 박사, McCormick Semi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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