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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정 칼럼] 프라이드 치킨과 라면


우습게 다친 팔의 통증은 침을 맞아도, 병원에 가도 낫지 않고 계속 아팠다. 한국에 가면 주사 몇 번 맞으면 나을 것 같은데 미국의 병원은 뭔가 시원치 못하다. 팔의 통증을 감당하기도 벅찬데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탓인지 감기까지 걸렸다. 며칠을 기절한 것처럼 누워서 정신을 못 차리고 앓다가 일어나니 서촌 어느 집의 삼계탕을 먹으면 기운을 차릴 것 같았다. 아니 삼청동 수제비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한국의 음식을 먹고 싶은 아주 원초적인 본능에서 시작된 흔들림은 한없이 계속됐다.

한국 생각이 굴뚝같아졌다.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한국을 왔다갔다 하다가 또다시 쓰러져 며칠을 향수병을 앓았다. 팔의 통증이나 감기보다 더한 병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몹쓸 향수병은 사람을 슬프고 우울하게 하고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갑자기 이곳을 떠나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물론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지만 그런 이유 따위는 향수병 앞에서는 너무나 무력해지는 것이었다. 더구나 계획은 변경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미국에 그런대로 적응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이곳의 깨끗한 공기와 자연을 좋아했지만 ‘그런 것 다 필요 없다. 떠나라.’였다. 마치 악마의 속삭임 같았다.

떠나야 할 이유만 머릿속에 가득해져 머리가 무거워질 지경이었다. 한국에 있는 아이들과 동생, 친구들이 더욱 보고 싶어졌다. 그토록 원하던 딸의 결혼 후에 사위한테 밥 한 번 제대로 못해주고 사는 것, 귀엽고 예쁜 손자 크는 것도 못 보고 사는 것은 결코 올바른 삶이 아니라는 속삭임이 계속되고 있었다. ‘네가 좋아하던 이곳의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하늘도 네 것이 아닌데 무슨 소용이냐. 네 나라로 돌아가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냐’ 며 등을 떠밀고 있었다. 속삭임의 충동질을 이기지 못한 나는
마침내 마음 속으로 이삿짐을 싸기 시작했다. 어떤 것은 버리고, 어떤 것은 누구 주고 어떤 것은 가지고 가야 할지 머리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남편에게 ‘우리의 대이동’에 대해 의논하려고 했으나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몇 번을 망설이던 끝에 말을 꺼내는데 그만 목이 메었다. 남편이 눈치챌까 봐 헛기침을 하며 얼른 말을 얼버무리고 말았다. “한국에 가고 싶어서…” 라고. 남편은 멋도 모르고 흔쾌하게 “그래. 가서 팔도 치료 받고 애들도 보고 친구들도 만나서 놀다 와” 했다. 이럴 때는 남편이 눈치 없는 것이 다행이다. 한국이 옆집인양 놀다 오라며 평온한 남편의 얼굴을 보니 갑자기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시원찮은 마누라가 여기저기 아프다더니 이제는 뜬금없는 소리를 하며 남편까지 혼란스럽게 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향수병인지 우울증인지 방치할 수 없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스스로 넘어졌으니 스스로 일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손수 요리할 기분도 아니고 힘도 없어서 삼계탕 대신 프라이드치킨을 사 먹었다. 치킨이 퍽퍽해서인지 삼키는데 눈물이 나려고 했다. 삼청동 수제비 대신 라면을 끓여 먹었다. 삼계탕과 수제비를 프라이드 치킨과 라면으로 대체한 것은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었지만 실망스럽도록 다른 음식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대체할 음식이 있음이 고마워하며 다시는 마음을 흔드는 속삭임 따위에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넘어진 자의 대부분은 일어설 수 있다. 더구나 나는 태평양을 건너온 용감한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던가. 1분기에 일어나는 사고였던 것 같다. 1분기에 나는 몸이 아프거나 다친 적이 많다. 올해는 이걸로 1분기 행사(?)를 치른 걸로 한다. 다행이 열심히 운동하는 가운데 팔의 통증도 줄고 있다. 몸이 아프거나 불편하면 마음도 약해지고 감정이나 사고도 흔들리기 쉽다. 지나고 보니 감기 앓다가 별별 생각까지 하며 향수병까지 된통 앓게 된 셈이다. 건강한 것이 가장 좋지만 혹 몸이 아프더라도 생각을 통해 들어온 유혹에, 마음까지 휘둘리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한다. 프라이드 치킨과 라면을 기억하며…. 마음을 굳게 지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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