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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그레이 칼럼] 애너벨 박이 바꾼 애너벨 리의 인상


오래전부터 나는 ‘애너벨’이란 이름에 약하다. 부드럽게 입안에 감치는 그 이름은 뭔가 처연하고 애틋한 여운으로 언제나 나를 사로잡았다.

아마 19세기 미국의 소설가며 시인인 에드거 앨런 포의 시 중에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사랑이야기를 쓴 것을 읽은 후부터 였던 것 같다. 주로 섬찟한 광기로 두려움을 주는 괴기소설을 쓴 작가에게 놀랍게도 감상적인 부드러움이 있었다. 그의 시 ‘애너벨 리’는 아름답고 슬픈 마치 소설같은 스토리를 가졌다. 어릴적부터 사귀며 사랑한 여자가 갑자기 죽자 그녀와 함께 강렬하게 나눈 사랑과 상실의 아픔을 살랑이는 물가의 버드나무처럼 가벼운 발라드로 노래한 남자의 애달픈 독백이다.

소녀적에 이 시를 처음 읽고 주인공인 ‘애너벨 리’를 부러워했다. ‘…나와 나의 애너벨 리는/ 사랑 이상의 사랑을 하였지/ 천상의 날개 달린 천사도/ 그녀와 나를 부러워할 그런 사랑을/…내 영혼을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영혼으로부터 떼어내지 못했네… ’ 남자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숨을 쉬는 그녀는 세상의 어느 여자보다 행복한 여자다. 신체는 생과 사로 나눠졌어도 영혼은 하나로 뭉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읊으며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와 그런 지고한 사랑을 하고 싶은 환상을 가졌었다.

프랑스의 화가이며 시인인 마리 로랑생의 시 ‘잊혀진 여자’로 사랑에 대한 나의 소망은 또 다른 도전을 받았다. ‘…쫓겨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죽은 여자/ 죽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잊혀진 여자/ 잊혀진다는 건 가장 슬픈 일’ 나는 절대로 ‘잊혀진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삶의 계절을 살면서 이런 착각에서 깨어났고 신화나 예술작품에서 탄생한 여자들과 나의 다름을 받아들였다. 나도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혀진 여자가 되리라 하다가 예전의 나처럼 잊혀진 여자가 되길 거부하는 딸과 친구를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딸의 친구 중에 이름이 ‘애너벨’인 여자가 있다. 그녀는 한국계 이민 1.5세라 더욱 정겹다. 9살에 미국 와서 40년을 산 그녀는 정서적인 미국인으로 미국사회를 분리시키는 이슈를 집중취재하고 홍보 영상을 제작해서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며 사회운동가로 활약한다. 밝은 사회를 위한 희망을 가지고 사회 병폐의 치유를 위해 헌신하는 그녀는 소신대로 행동한다. 그녀와 달리 진실로 하고싶은 일은 접어두고 생활전선에 뛰어들도록 딸에게 권장했던 나는 늘 미안하다. 애너벨처럼 신선한 공기같은 여러 친구가 각 분야에서 펼치는 활동상은 간혹 딸의 어깨죽지에 힘을 빼기도 하지만 멋진 기회도 준다. 딸은 애너벨을 통해서 워싱턴DC를 방문하는 톡톡 튀는 한인들을 더러 만난다.

오랫동안 소식으로만 알았던 애너벨을 실제로 만났다. 1월중순 어느날 딸이 퇴근하기 전에 그녀가 딸네로 찾아왔다. 자그마한 체구의 그녀는 두텁게 입고 온 코트를 벗자마자 아이를 안고 유대계 미국 레게 가수인 마티스야후의 ‘One Day’ 노래에 따라 덩실덩실 춤을 췄다. 어느날 평화롭고 자유로운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을 가진 흥겨운 가사는 아이와 그녀에게 썩 잘 어울렸다.

지난 12월 앨라배마 상원 특별 선거전을 보러 앨라배마를 방문했던 애너벨은 종교에 기반을 둔 남부문화를 체험했다. 특히 2017년은 백인들이 유색인에 가진 편견과 불신이 빙산의 일각으로 표면화된 사건들이 많았다.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면서 우리는 이민과 투표권법 비리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여러 분야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미국사회의 고질병들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엉킨 실타래를 풀듯이 차근차근 뒤틀린 이념의 고리를 풀어나가는 딸과 애너벨의 이성적인 접근과 달리 남부 소도시에 사는 남편과 나는 감정이 섞인 보수적인 대응을 하는 점이 재미있었다.

정의로움의 불덩어리를 가슴에 품은 딸과 애너벨은 어쩌면 이상주의자다. 하지만 물방울이 바위를 깨듯이 언젠가는 그녀들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편한 사회의식을 이해와 배려로 바꾸고 평등한 인권을 보장하는 환경으로 변화시키는데 일조를 하리라 믿는다. 특히 애너벨은 내가 에드거 앨런 포의 ‘애너벨 리’로 가졌던 여린 여성상을 당찬 포부를 가진 열성파 ‘애너벨 박’으로 바꿔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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