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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옥 칼럼] 고달픈 노년의 삶

[애틀랜타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8/10 06:55

“노년의 삶이 무너진다?” 그것도 세계 최강국이라 불리우는 미국에서….

이번 주 동포사회는 물론 미국의 여러 언론에서 톱 뉴스로 내 놓은 기사의 머리말이다. 노년층의 파산이 급증하고 있다는 내용은 충격적이다. 특히 활동적인 다른 연령대의 파산은 줄어드는 추세인 반면 사회적 활동량이 극히 저조한 고령일수록 파산 증가율이 더 가파르다고 데보라 손 아이다호대학 교수 연구팀이 분석, 발표했다.

미국인들이 세상을 살면서 겪는 실패나 좌절에 대한 인간의 심리적 영향을 지수로 나타낸 적이 있다. 어떠한 일을 당했을 때 좌절감을 느끼지 않는 경우의 지수를 제로(0)로 하고 죽음을 생각하며 절망에 빠져 가장 심각한 상태인 경우를 -10,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의 상태로 생각하고 발전의 기회로 여기며 긍정적으로 소화시키는 경우를 +10으로 범위를 잡았다. 여기서 국적별로 평균지수를 종합해 보면 유태인계가 +5, 영국이나 독일계 미국인이 +5, 라틴계 미국인이 -2로 나타났다. 그러면 한국계 미국인의 패배 감각지수는 어느 정도 일까.

한 칼럼리스트의 글을 보면 아마도 한국인의 근성상 패배 감각지수는 마이너스 후반부로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사실 한국인도 라틴계 혈통만큼 꽤 다혈질이라서 어떠한 경우를 당하면 자칫 이성을 잃고 극단적인 생각으로 좌절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자식들이 자기 부모나 친지의 불행한 노년을 남의 일처럼 보고 있다면, 정부나 한인회와 같은 공공기관에서 파산 국면에 처한 불우한 노인들의 여생을 다소 보장해주는 배려가 필요할 듯하다.

한국인의 경로사상은 세계 어느 나라의 경우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높기만 했다. 환갑 지난 노부모를 모신 집에서는 양식이 떨어져도 큰 걱정거리로 삼지 않는다. 먼동이 트기 전에 부자 집에 가서 빗자루로 앞마당만 쓸고 오면 만사가 해결된다. 주인이 일어나 보고 머슴에게 “어느 뉘의 마당 쓸기냐”고 묻고, 그 집안의 노친 나이와 살림살이, 거처 등을 물은 뒤 “열흘 먹을 양식과 보름 동안 주전부리할 것을 싸서 가져다 주라”고 한다. 이 불청의 노동을 ‘마당 쓸이’라고 하는데, ‘마당 쓸이’는 노부모 먹을 양식이 떨어졌다는 묵계된 신호로 통했다.

전래되어 오는 향약을 보면 치계미(雉鷄米)라는 말이 나온다. 동네 부자들은 어른들을 위해 봄 가을에 경로잔치를 베풀고 입동, 동지날에 일정한 연령 이상의 노인들에게 쌀을 선물로 드리는데 이 쌀을 치계미로 불렀다. 그러면 돈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어른들의 은혜를 어떻게 보답했는가.

논 한 뙈기, 밭 한 다랑이 없는 가난한 집에서도 일년에 한번 정도는 노인들을 위해 ‘도랑탕 잔치’를 베풀어 드렸다. 벼를 베기 위해 논물을 빼는 작업을 도랑 친다고 하는데, 가난한 농부들은 도랑을 칠 때 누렇게 기름이 오른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끓여 벌판에서 노인들을 정성으로 모신다. 할아버지뿐 아니라 손주 새끼들도 이 빠진 뚝배기 하나를 등 뒤에 숨기고 할아버지 할머니 옷자락을 붙들고 도랑탕 잔치에 따라 나선다. 불청객인 손주 새끼들은 이렇게 밥그릇을 가지고 가야 하는데, 어느 누구도 이 불청객을 탓하지 않고, 한 국자 듬뿍 추어탕을 안겨준다.

마을에 애경사가 있을 때 사람들은 돼지를 잡는다. 주인은 살코기만을 소유하고 내장 고기는 마을의 노인들 소유로 돌리는 것이 한국 사람들의 관행이었다. 마을에 따라 다르지만 60세 이상, 70세 이상의 노인이 있는 집에 골고루 등분하여 내장 고기를 나누어 드렸는데, 이 경로 습속을 배장(配臟)이라 불렀다. 배장이며, 마당쓸이, 치계미, 도랑탕이며 하는 아름다운 민속으로 옛날 노인들은 살 맛이 났음직하고, 늙은 것이 서럽지 않다는 인생의 보람을 가지게 된다. 우리 선조들은 먹고 입고 사는데 가난할지언정 적어도 노인들 배 불리는 데에는 인색하지 않고 살았다.

고구려 말에 무정한 남자가 수레에 늙은 어미를 태워 놓고 아들에게 숲 속에 내다 버리라고 했다. 소위 말하는 고려장인데, 아들은 아비의 말을 듣고 할미를 숲 속 깊은 곳에 버리고 수레를 끌고 울면서 집에 돌아왔다. 아비가 돌아온 자식에게 왜 수레는 가져왔냐고 묻자 나중에 아비를 버릴 때 쓸려고 가져왔다고 하며 대성통곡을 한다. 아비는 자식의 말에 크게 반성하고 그 길로 수레를 끌고 숲 속에 가서 버려진 어미를 다시 모셔와서 집에서 임종을 지켜보았다는 고사가 있다.

병원비나 약값 때문에 쌓여가는 신용카드 빚이 사회보장연금으로도 감당이 안되는 상황에서 노인들의 파산 보호 신청은 향후 신용불량이라는 낙인으로 더욱 고달픈 여생을 보낼게 뻔하다. 대접 받아야 할 노인들의 삶이 조금은 편해질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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