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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재수 없으면 오래 산다

[애틀랜타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8/10 15:32


환갑잔치하려면 눈치를 보고 80~90 넘겨 사는 것은 보통인 세상이다. ‘100세 시대’는 당연시하고 한국 경로당에 가면 70대 초반은 막내뻘이라 잔일은 나서서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70~80대 노배우들의 국외여행을 테마로 한 ‘꽃보다 할배’가 계속해서 속편을 내놓고, 최근에는 70대 노인이 6개월 동안 세계 배낭여행을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얼마 전에 나온 ‘71세에 떠난 좌충우돌 배낭 여행기’가 그 책 제목이다. 나이를 내세워 뒤로 물러앉을 때는 옛날이다. 나이에 무관하게 도전하며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노후가 행복하고 오래 살 수 있다.
오래 살려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필수다. 또 노후 생활을 위한 재정적 뒷받침도 따라야 한다. 그게 안 되면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말도 나오게 된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지만 햇수만 따질 일이 아니다. 삶의 질이 문제다. 어떤 삶이 양질인지에 대한 전문가나 식자 간에 의견을 종합해 보면 근심 걱정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고, 남을 보살피고, 도움을 주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데 대개 일치한다. “우리가 제한된 생리적 수명을 가지고 오래 살고 부유하게 사는 방법은 아름다운 인연을 많이 맺으며 나날이 적고 착한 일을 하고, 때로 살아온 자기 과거를 다시 사는 데 있는가 한다.”라고 말한 작가가 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재수 없으면 200살까지 산다”라는 모 한국 생명공학 전문가의 유튜브 비디오를 본 일이 있다. 그의 연설 요지는 최근 등장한 크리스퍼(CRISPR)라는 유전자 편집 기술로 이제는 아인슈타인의 지능을 갖는 슈퍼 베이비의 탄생이나 평균수명이 200살이 넘는 삶을 실현할 수도 있다는 엄청난 이야기다. 그런데 그 연설 제목의 ‘재수 없으면’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 얼핏 듣기에 ‘장수도 좋지만, 너무 오래 사는 것은 재수 없는 일’이라는 말 아닌가? 장수가 왜 재수 없는 일인지 좀 생각해 보기로 했다.
재수는 원래 토정비결처럼 사람 운세를 보거나 앞일을 점치는 데서 나온 말이다. 엄격히 따지고 들면 우리가 알고 싶은 애정, 재물, 취직, 이사, 출세, 건강, 자식 등 여러 항목 중에 재물에 관해 앞일을 점치는 것이 재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재수는 우리 미래에 닥칠 운수 전체를 일반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일컫는 말로 탈바꿈했다. 또 ‘재수 옴 붙었다’, ‘재수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그놈 재수 없게 생겼다’에서처럼 재수는 부정적인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재수 없는 것은 나쁜 것이고 피해야 한다.
노년을 부정적으로 보는 측면에서 보면 늙음은 괴로움이다. 그 대표적 표현에 노년 사고(老年 四苦)가 있다. 노년에 당하는 괴로움 네 가지인데 무위(無爲), 질병(疾病), 빈곤(貧困), 고독(孤獨)이다. 나이 들어 마땅히 할 일이 없어 빈둥빈둥 소일하는 일, 신체의 노화에 따른 각종 질환, 노년의 가난함 그리고 배우자를 잃거나 친구, 가족과 소원해지는 데 따른 고독감을 말한다. 이 네 가지 고통이 개별적일 뿐 아니라 겹치게 되면 사태는 극한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200살은 그만두고 신빙성 있는 세계 최장수 기록인 122살 먹었다고 가정해 보자. 시력과 청력은 잃은 지 오래고, 고단한 삭신은 멀쩡한 곳 없이 구석구석이 느른하고, 거친 살가죽은 뼈에 달라붙어 때깔 좋은 옛 모습은 해묵은 사진에서나 찾을 수 있다. 노환이 아니더라도 도움 없이는 거동도 할 수 없고 동년배 친구나 친지들은 다 이 세상을 떠난 지 오래다. 십중팔구 배우자나 아들딸들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오늘과 내일이 다르게 바삐 돌아가는 세상사 그리고 온갖 새로운 문명의 이기, 테크놀러지에는 까막눈이고 관심도 없다. 이렇게 되면 살 만큼 살고 먼저 간 사람들은 행운아다. 재수 없으면 오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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