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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왔던 ‘또 다른 나’와의 대화

조현범 기자
조현범 기자

[애틀랜타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8/12 16:28

왼쪽부터 패티 길 작가, 크리스틴 스완슨 감독, 배우 제니 강.

왼쪽부터 패티 길 작가, 크리스틴 스완슨 감독, 배우 제니 강.

각종 영화제 큰 반향 자전적 영화 ‘블랙코리아’ 주역 인터뷰
“중국인이라 불릴 때 분노 느꼈지만 생존 위해 흑인 삶 선택”
‘정체성 혼란·트라우마’ 한흑 혼혈인 작가·감독의 격정 토로
“상처 마주한 것이 제작 첫걸음…인간적 슬픔 공감하길 바래”


단편영화 ‘블랙코리아(Blackorea)’는 어릴 적 한국인 어머니와 이별하는 바람에 문화적으로는 완전히 흑인으로 살아온 한흑 혼혈인 작가와 영화감독이 힘을 합친 작품이다. 작가 패티 길(Patti Gill)의 한국인 어머니(제니 강 연기)가 13살 패티를 친할머니 집에 데려다주고는 사라져버리는 장면을 중심으로 그가 겪는 정체성 혼란과 트라우마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로, 각종 영화제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길 작가와 크리스틴 스완슨(Christine Swanson) 감독에게 이 영화 제작 과정은 애써 외면했었던 한국인으로서 자신을 다시 마주하게 된 계기였다. 길 작가의 로렌스빌 집에서 스완슨 감독, 배우 제니 강씨와 만났다.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내게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부끄러움이었다. 엄마가 날 버렸다는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아서 돌아가셨다거나 한국에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내 자녀들이 크면서 엄마가 정말 ‘코리안’이 맞냐고, 외할머니는 어떤 사람이었냐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상처투성이였지만, 한국인으로서의 내 모습을 다시 꺼내 마주 봐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 블로그를 시작했고, 탤런트 에이전트로 영화, TV 업계에서 일하며 알게 지내던 스완슨 감독을 졸라 대본 작업을 시작했다.

=첫 오디션 때는 대사 몇 줄만을 가지고 연기를 했지만, 두 번째 오디션에서 줄거리를 알게 되었다. 나는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반대로 한국에서 잠깐 대학 생활을 할 때 느꼈던 정체성 혼란을 떠올리며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

스완슨=‘블랙코리아’는 버려짐이라는 트라우마, 특히 부모가 내팽개친 사람들이 느끼는 원초적인 슬픔 대한 이야기다.

나는 6살까지 한국에서 한국말을 하며 외가 친척들 손에 한국인으로 자랐다. 그런데 부모님의 이혼과 동시에 어머니는 그전까지 내 정체성을 구성했던 모든 것과 함께 내 인생에서 사라져버렸다.

그 후엔 아버지를 따라 디트로이트의 흑인 밀집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완전히 다른 세상 속에 나만 홀로 빠져버린 기분이었다. 친구들이 나를 ‘차이니즈’라고 불렀다. 한국 사람에게 중국인이라고 부르는 건 싸우자는 말 아닌가. 왠지 모를 분노를 느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는 생존하기 위해서 적자가 돼야 했고, 흑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차분한 대화로 해결하는 호사를 누리지 못했다.

영화 제작이 하나의 치유의 과정이 된 것 같다.

스완슨=4명의 자녀를 키우다 보니 다섯 살이면 그 사람의 성격과 정체성이 이미 형성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여섯 살짜리 한국인으로서 삶을 시작했는데, 성인으로서 과연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살다 보니 바빴고, 회피로 일관해왔다. 이 복잡한 상처를 마주하는 것이 블랙코리아 제작의 첫걸음이었다.

이 영화를 통해 한인으로서 나의 정체성을 좀 더 탐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수많은 다른 BK(한흑 혼혈인을 이렇게 불렀다)들을 만났고, 커뮤니티를 만나 용기를 얻었다. 한인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그 탐험의 목표가 아니다. 누구도 우리가 한국인인지 판단할 권리는 없다. 우리는 우리가 엄연한 한국인인 걸 분명히 알고 있다. 그래서 한국인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완전히 받아들이려는 것이다.

‘블랙코리아’는 LA 폭동의 전조로 여겨지는 랩 노래의 제목이기도 하다. 한흑갈등에 대한 생각도 영화에 담았나.

=‘블랙코리아’는 한인과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하나 된다는 의미에서 두 단어를 한데 합친 것이다. 아이스 큐브의 노래는 고려하지 않았다.

스완슨=한흑 갈등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나는 어머니가 사라진 이후로는 흑인으로 살아왔고, 어차피 한인들은 우리를 보고 한인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선택 자체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흑인 커뮤니티는 나를 품어줬다. 지금 나는 흑인이고, 흑인 남편이 있고, 흑인 자녀를 뒀다. LA 폭동과 같은 한흑 갈등에서 흑인들의 입장에 좀 더 공감할 수밖에 없다.

어머니가 이 영화를 보길 바라나.

스완슨=어머니는 살아계시고, 연락처도 알고 있다. 그런데 굳이 연락해서 영화를 보시라고 말하진 않을 거다. 우선 이 영화는 내 어머니가 아니라 패티의 어머니에 대한 영화이다. 또, 나는 내 감정을 누구에게 설명해야 할 의무가 없다. 보고 싶다면 알아서 보실 거다.

한국인들이 이 영화를 봤을 때 어떤 반응을 기대하나?

스완슨=어머니가 자녀를 버리고 떠난다는 것 자체가 대다수 한국인에게는 이질적인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흑인과 결혼한 한국인 여성에 대한 편견도 남아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인간적인 슬픔에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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