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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칼럼] 멋진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

[애틀랜타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8/12 16:30

누구에게 강요받지 않고 스스로 신이 나서 하는 일을 취미라고 한다면, 나는 상당히 많은 취미를 가진 편이다. 그중에서 으뜸은 물론 독서가 될 것이고 둘째는 고전음악 감상이고, 그다음은 매일 즐기는 다도(茶道)를 들 수 있겠다. 그 외에도 틈틈이 즐기는 서예가 있고, 물레질도 있고 혼자 즐기는 악기 연주도 있다. 또한 간간이 쓰는 수필도 쓰고, 한 주에 서너 번씩 수영을 하고 태극권을 연마하니 그것도 취미라 할 수 있겠다.

그뿐이랴. 몇 년 전에 시작했던 뮤직 밴드에서 다리를 흔들며 베이스 기타를 치면서 소위 ‘딴따라’ 기분을 내어보는 즐거움도 크다. 이쯤 되면 도대체 먹고사는 일은 언제 하냐는 질문이 바로 나올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취미를 즐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먹고사는 일이 순탄해야 하므로 생업에는 더욱 열심을 낸다.

어쨌든, 동서양을 막론하고 독서나 클래식 음악, 미술 감상 또는 다도를 즐기는 것을 고상한 취미라고 인정한다. 게다가 그런 고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은 틀림없이 엘리트이고 지성적인 사람이라는 편견도 있다. 그 때문에 특이한 인간으로 분류되어 소외당했던 적도 있어서 살그머니 해 왔던 일이었지만, 그 많은 취미 때문에 생각지 못한 특혜를 받았던 적도 있었다.

딸아이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과 면담을 하는 시간이었다. 교실에 들어서니 선생님이 딸애가 그린 그림 한 장을 내 앞에 꺼내 놓았다. 딸애의 그림 속에는 많은 책과 시디(CD)들 그리고 찻잔 세트와 몇 가지 악기들이 파란색 크레용으로 삐뚤빼뚤 그려져 있었다. 그림의 제목은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 (Things My Mom Likes)’이었다.

“맞네요,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렸어요.”라고 내가 말하자, 선생님이 “정말?” 하며 놀랐었다. 몇 년간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이렇게 많은 것을 그렸던 아이는 딸애가 처음이라고 했다. 다른 애들은 뭘 그렸냐고 묻자, 선생님이 보여준 그림들 속에는 지폐, 목걸이와 반지, 귀걸이, 카우보이 부츠, 자동차, 아이스크림, 화장품, 매니큐어, TV, 꽃다발, 모종삽 심지어는 엄마가 쿨쿨 자는 모습도 들어있었다.

6살배기 천진한 급우들이 그린 귀여운 그림에 비해 내 딸이 그렸던 물건들이 너무 고상해서 놀랐던 건지 아니면 먹고 살기도 빠듯해 보이는 이민가정 주부의 고상한 취미에 선생님이 놀랐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이후,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선생님이 딸애를 유달리 예뻐했던 것은 아마도 내 취미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난주에 함께 저녁을 먹던 지인이 은퇴 후에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할지를 걱정했다. 취미를 가져보라는 내 말에, 멋진 취미를 즐길 수 있는 나의 환경과 조건이 부럽다는 게 그의 대답이었다. 정말 그럴까? 내가 여러 가지 취미를 즐기는 것은 돈과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서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다. 또한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어릴 적 익혔던 것들을 토대로 성인이 된 후에, 긴 시간을 공들여 익히면서 얻어진 결실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그렸던 삶의 모습을 갖춘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만 보고 부러워한다면, 정작 결과 뒤에 숨겨진 그 사람의 소중한 면들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사는 일이 풍족해야만 취미를 갖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된다. 누군가에게 취미는 인생살이에서 겪었던 아픔을 삭이고 슬픔을 이겨내려는 방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물러나 조용히 책을 읽든 음악을 즐기든 산책을 하든,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든, 자신을 움직이지 않고서 취미를 즐길 수 없다. 또한 행동이 따르지 않고서 어찌 여가를 즐길 수 있을까. 나만을 위한 시간이 거품처럼 사라지기 전에 마음이 가는 곳으로 나를 위해 몸을 움직여서 무엇인가를 행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여가를 멋지게 즐기는 방법이다. 자, 이제 차 마실 시간이다. 찻물을 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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