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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호 역사 칼럼] 난장이가 들어 있는 기계, 라디오

예전에는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에게 라디오 속에 조그만 사람들이 들어 있다고 우스개로 속이는 일이 흔히 있었다. 과학을 접해보지 못한 어린이들은 라디오 속에 정말로 조그만 사람들이 들어 있으면서 온갖 소리를 낸다고 믿기도 했다.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에는 전파 매체에서 라디오가 유일한 존재이다시피 했고, 조그만 상자 속에서 온갖 소리가 나오므로 라디오 속에 사람들이 들어 있다고 믿는 일이 크게 무리는 아니라고 하겠다. 줄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채로 멀리서부터 오는 소리를 전해주는 라디오는 지금에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신기하게 여길 때도 있다. 현재에는 TV에 밀려 예전과 같은 전성기를 누리지 못하지만, 라디오는 아직도 대중에게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에는 라디오가 필수적인 부품이다.

‘Radio’라는 말은 ‘넓게 퍼지는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같은 어원에서 출발한 말 중에서 ‘방사능’을 뜻하는 ‘Radiology’가 있고, 열을 발산한다는 뜻의 ‘Radiator’라는 말도 있다. 따라서 ‘라디오’의 원래의 뜻은 전파를 발산한다는 뜻이다. 즉 공중으로 전파를 내보내는 기술이 라디오의 기본적인 기술이다. 라디오가 발명된 데는 기본적으로 무선 전신 기술이 밑바탕이 되었다. 줄로 연결된 전신 기술은 1837년에 모르스(Morse)가 발명하여 철도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하지만 줄로 연결되지 않은 채 공중으로 전파를 쏘는 방법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필요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한다. 사람들이 지극히 필요를 느끼면 언젠가는 누군가가 그 방법을 알아내고야 만다.

드디어 1888년 독일의 헤르츠가 전자기파라는 존재를 발견하여 줄이 없이 전파를 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여 1897년 이탈리아의 마르코니가 전파를 이용한 무선전신을 발명하여 신호를 공중으로 보내는 방법을 알아냈다. 문제는 소리를 전파에 싣는 방법을 찾아내는 점이었다. 많은 과학자와 발명가들이 무선으로 보내는 전파에 소리를 싣는 방법을 알아내서 대박을 터트리기 위해 몰두했다. 1876년에 벨(Bell)이 발명한 전화기에서 음성 통신이 가능한 것과 1978년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하여 음성을 재생해내는 것에 착안한 과학자들이 전파에도 음성을 실을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들 중에 가장 먼저 성공한 사람이 캐나다 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레지날드 페센덴(Reginald Fessenden)이라는 발명가이다. 그는 역사상 최초로 메릴랜드에서 전파에 음성을 실어 영국에서 수신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어서 1904년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마르코니가 주파수를 조정하며 원하는 방송을 듣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이로써 전파에 소리를 실어 보내는 방법의 발달은 급물살을 탔다. 그중에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선박에서 라디오의 이용은 엄청난 효율성을 가져다 주었다. 특히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미국의 해군은 라디오 기술을 이용함으로써 혁신적인 전과를 올릴 수 있었다.



그후 라디오의 상업적인 이용은 1920년 이후에 일어났다. 미국과 유럽 각국에서 공식적인 라디오 방송국이 생기고 라디오 수신기가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라디오 방송은 새 시대의 총아가 되었다. 그런데 이때까지의 라디오 방송의 방법은 AM 방식이었다. 1933년 암스토롱(Edwin Armstrong)이라는 미국 발명가가 FM 방식을 발명했다. AM 방식은 진폭에 변화를 주어 송출하는 방식이고, FM 방식은 주파수에 변화를 주어 송출하는 방식을 말한다. AM 방식은 멀리 보내는 데는 유리하나 다른 전파와 뒤섞여 잡음이 많은 것이 흠이다. FM 방식을 이용하면 잡음을 대폭 줄일 수 있지만, 멀리 전파를 보내는 데는 불리하다. 양쪽 모두 장단점이 있으므로 지금도 AM 방식과 FM 방식이 모두 장단점에 따라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FM 방식의 방송을 둘러싼 씁쓸한 이야기가 있다. FM 방식을 발명한 암스트롱은 그때 당시에 미국에서 라디오 방송을 독점하다시피 하던 RCA 방송사에 특허를 팔고자 했으나 거절당하고 독자적으로 작은 방송사를 차렸다. 그러나 이에 위협을 느낀 RCA 방송사는 정부 당국에 압력을 넣어 암스트롱의 방송사를 망하게 만들었다. 그는 20년 동안 특허 침해 등을 이유로 RAC에 소송하며 싸웠으나 대기업을 상대로 한 역부족인 싸움에서 시달리다가 아무 성과 없이 1952년 뉴욕에서 살던 아파트 빌딩 10층 아래로 떨어져 자살했다. 이렇듯 문명의 이기가 발전한 데는 비인간적인 욕심을 부린 대기업의 횡포에 스러져간 한 발명가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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