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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칼럼] 인생은 연극이다

살면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속한 계층과 위치에 맞게 거의 본능적으로 자신을 연출한다. 나 역시 어떤 이익이나 목적을 달성하려 하기보다는, 관계의 불편함을 잠시 덜기 위해서 속마음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을 때가 있다. 직업선 상에서 보면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추는 것이 되겠지만, 사적인 관계에서 내 본연의 모습을 감추는 것은 상대방뿐 아니라 나 자신을 기만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

생각해 보면 삶에는 연극적인 요소가 참 많다. 그래서 인생을 한 편의 연극이라고 했나, 나 홀로 태어나 내 인생에 주연이 되기도 하고, 어느 때엔 다른 인생의 조연이 되기도 하다가, 때론 지나가는 사람으로 다른 인생의 엑스트라 역할을 맡아 펼쳐가는 장대한 서사극 같다. 인생에는 비극보다는 희극인 순간이 더 많아서 다행이지만, 인생이 희극이 될지 비극이 될지는, 자신이 선택한 인생관이 비관인가 낙관인가에 달린 것 같다.

노인을 대하다 보면, 상대방에게 마음속의 분노를 숨기고 태연한 것처럼 연기하는 분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했을 때, 자신이 남보다 못하거나,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불만이나 수치심으로 자신의 처지를 속으로 비관하면서 자신을 고립시키거나 음식을 거부하면서 끊임없이 고통을 호소한다. 물론,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위로를 받고 나면 다시 돌아서지만, 오래전부터 반복해 왔던 일이라 습관처럼 되어 버린 비극이다.

‘똑같은 물을 마시고 뱀은 독을 만들고 소는 우유를 만든다’는 옛말이 있다. 같은 부모 밑에서 자라난 형제들도 성장 후 모습이 제각각인데, 하물며 칠팔 십 년 다른 환경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함께 오래 지낸다고 어찌 변할 수 있으랴. 그저 노인의 사는 모습을 보면서 젊은 날 그들의 삶의 모습을 가늠하며 그 진솔함을 가늠해 보는 수밖에



작고하신 최 목사님의 이야기다. 내 나이 삼 십 대 후반에 만나 뵙고는, 스무 해가 지나는 동안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사 년 전 즈음 양로원에서 다시 만났다. 치매 증세가 무척 깊어져 있었다. 인력으로는 막을 수 없는 병이니, 돌아가실 전까지 인간의 존엄성만은 지킬 수 있도록 돕자는 각오로 시작했었다.

내 경험 속에서 치매 환자란 불과 몇 분 전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목사님과 보냈던 2년 반 동안 나는 편견을 버렸다. 치매에도 인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고, 어떤 질병에서도 고매한 인품은 변질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최 목사님이 식사 기도를 할 때 있었던 일이다. 식사 기도의 마지막 부분인 ‘주님의 이름으로 감사드립니다”라는 내용이 나올 듯하다가도 다시 기도를 시작하는 내용으로 서너 번씩 되돌아가는 일이 빈번했다. 결국 끝내야 할 부분 즈음에서 내가 “아멘!” 소리를 내면, 머리 좋으신 목사님은 담박 눈치를 채고는 “주님의 아름으로…”라며 기도를 끝냈다.

IQ가 140이 넘는 목사님 때문에 양로원에 웃음소리가 퍼졌던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목사님, 오늘 점심 뭐 드셨어요?” 하고 물었다. 10분 전에 먹은 것도 기억하지 못하시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했던 질문이다. 그럴 때면 잠시 두 눈을 깜빡이다 씩 웃으며 한마디 던지셨다. “알아맞혀 봐!”

썬룸에 나란히 앉아서 뒷마당 숲을 바라보면 “어떻게 이런 깊은 산 속에다 장소를 구했나, 소나무 숲이 참 좋아.” 목사님이 했던 말이다. “목사님, 여기 앞문을 열면 대로가 훤히 보이는 번화가에요”라고 그때 이실직고할 걸 그랬나. “목사님 놀렸다고 나 이담에 천국행에 변동 있는 거 아니죠?” 내가 물으면 목사님은 “그럼, 예수님은 절대로 사기 안 쳐” 하시면서 온 양로원에 웃음소리가 퍼지게 했을 텐데. 지난 추억들이 한바탕 연극 장면처럼 떠오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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