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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호수는 스스로 노을이 됩니다

해가 길어져 9시가 되어서야 어둑해집니다
그때 호수 맞은편으로 노을이 깊어 지지요
곧 어두워질 노을, 호수는 온몸으로 받아 노을이 됩니다
노을은 호수가 되고 호수는 스스로 노을이 됩니다
서로에게 물들고 서로에게 잠겨 하나가 됩니다
오늘도 세상은 시끄럽고 편치 않아 보입니다
모두가 이기려 하고 지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습니다
사실 이기고 지는 건 없는데 말이지요


이기는 경우가 결국 지는 꼴이 되기도 하고
지는 경우가 나중에 이기는 결과로 돌아 오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행복과 불행은 마냥 기뻐할 일도
무작정 슬퍼할 일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길을 갈뿐
그곳엔 성공이란 훈장도 실패란 낙오도 없습니다
서로 걸어온 긴 발자국만 그림자처럼 뒤에 남겠지요
우린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 살다가 갑니다
그 무엇이 되기 위해 살진 않지만 그 무엇으로 남겨집니다
노을을 바라보는 이 시간은 고요가 물들어가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만큼은 시계의 초침도 쉬어 가는 듯
하늘과 호수만 남고 모두 침묵 속으로 잠깁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긴 시간 정지된 풍경만 살아 있습니다
쿵쿵 울리던 심장 박동 소리마저 디크리센트입니다
고요의 한 정점으로 모아져 이내 모든 소리는 사라집니다
말없는 벙어리 되어 당신 길 위에 머무는 동안
하늘엔 온통 별들이 제 빛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잿빛 이었다가 회색이었다가 실버로, 빛나는 유채색으로...
하늘이 주는 은총은 밤하늘 가득 무수한 단어로 반짝입니다
미움과 증오의 단어는 빛을 잃어가고
위로와 감사의 문장들로 채워지는 밤하늘을 바라 봅니다
내 안에 오래 내려놓지 못한 미움과 서운함
진잔한 호수의 물결로 떠나 보내지 못하고
늘 다시 되돌려 받은 무거움을 밤하늘로 되돌려 보냅니다
밤하늘 수놓은 별들과 그 소리없이 흐르는 밤을 지내고
새로운 새벽이 하루의 창문을 두드리면 좋겠습니다
호수를 낀 작은 언덕을 걸을 때면 잔잔한 울림이 있습니다
호수와 노을이 하나로 어울리는 조화로움
푸른 잣나무와 물푸레 나무들이 함께 그 키를 키우고
언덕 기슭 잣나무 가지 끝에 앉은 휘파람새의 맑은 노래 들리는
이곳은 알 수 없는 편안함이 가득해 고향 같습니다
가르친 이 없어도 제자리를 지키는 풍경은 스승입니다
심겨진 곳에, 뿌려진 곳에 자라는 나무들과 들꽃들은
세상 살아가는 삶 굳이 배우지 않고도 벌써 어른입니다
자신의 자리를 불평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다른 이들의 자리를 부러워하거나, 탓하지 않는
조금씩 조금씩 이해의 폭을 넓혀가면서
서로의 생각을 공감으로 이끌어내는 배려가 쌓여가면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역지사지의 삶을 기대해 봅니다
호수는 노을이 되고, 노을은 호수가 되는
그래서 하나됨이 저절로 이해되는 날을 꿈꿔 봅니다
하늘엔 온통 별빛 빛나는 한밤중 입니다 [시카고 문인회장]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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