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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약속 Promise

NEFLEX를 통해 약속이란 영화 한편을 보았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던 1914년 터키 남부 지역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미카엘이란 한 청년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영화의 초입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터키 남부, 지중해의 경이로운 풍경과 함께 평범한 한 가정의 이야기로 펼쳐지고 있다. 의학을 공부해 고통과 아픔 속에 있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고쳐주려 하는 미카엘의 앞에 채 그 꿈을 펴보지도 못한 채 그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그는 내내 처참한 전쟁 속에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며 가족과 이웃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내려고 몸부림 친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지켜내려 했던 사람들은 모두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스스로 지어낸 각본이 있었다. 꼭 그렇게 되었으면 바랬던 이야기였다. 전쟁 속에 만나고 헤어지고 시간을 비껴가면서도 그토록 간절하게 사랑했던 아나와의 재회였다. 그러나 꿈에도 그리던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은 지중해의 깊은 물속이었다. 조난 중에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고 자신은 물살에 밀려 바다 밑으로 멀어져 가는 그녀를 보고 뛰어 들었지만 물속으로 점점 빠져들어가는 그녀를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움을 넘어 숭고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잃었지만, 다시는 이 손을 뻗어 그들을 안을 수도, 깊은 그들의 눈동자를 다시 바라볼 수 없어도 그 약속을 위해 성실히 살아갈 때 결국 그들과의 약속은 내 안에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약속을 이루어가는 과정은 내 안에 두려움과 이기심을 몰아내는 시간이 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약속 안에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 약속들을 지키기 위해 이른 아침 일어나고 고단한 몸으로 잠자리에 드는지도 모른다. 하루 8시간의 일도 약속이고, 부모가 아이를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것도 약속이다. 연인들이 장래를 설계하고 궂은일이나 행복한 일이나, 건강하거나 아프거나, 변치말자며 결혼하는 것도 약속이다. 봄에 싹이 트고 연두 잎사귀를 내는 것도, 저마다의 색깔로 얼굴을 내미는 꽃들도 그 시간 그 계절을 통해 무언의 약속들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구름이 검으면 비가 내리고, 한 겨울엔 눈이 내리는 것도 하늘의 약속이다. 세상은 약속 안에서 움직이고 그 약속은 생명이 다할 때까지 유효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약속은 또 다른 생명들이 이어서 이루어낼 것이다.



지난주 신문을 읽다 나의 눈을 고정시킨 기사가 있었다. 30년 전 약속했던 죽마고우의 훈훈한 이야기다. 누구라도 복권에 당첨되면 반씩 나누어 갖자던 이야기를 지킨 기사였다. 무려 나누어가진 금액이 십수억달러에 이른다. 어떤 계약도 없었고 싸인을 한 페이퍼도 없었다. 30년 전 말했던 그 약속을 지킨 것 뿐이었다. 내가 만약 그 상황이었다면, 당신이 만약 그런 상황이었다면 가능할 수 있을까?

부끄러워진다. 약속은 사랑과 같아서 자기의 몫을 계산할 때 절대 이루어낼 수 없다.
이 우주를 창조하신 그분의 약속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스테반이 불속에서 제 몸을 태워 순교한 것도, 베드로가 십자가에 꺼꾸로 매달려 제자로서의 삶을 마감한 것도 그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많은 선교사들이 제 몸을 아끼지 않고 오지의 열악한 횐경 속에서, 원주민의 공격으로, 생을 마감하면서도 웃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약속을 지켜냄이 삶의 최고의 가치였기 때문이었다.

"두려워 말라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함께하리라"는 성경의 약속 한 구절에 배불러지는 주일 아침이다. [시카고 문인회장]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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