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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영혼과 영혼이 하나 되는

여름이 가고 있다. 떠나는 것들의 뒷모습은 슬프다. 불타는 한여름 폭염 속에 진땀 흘렸던 숨가쁜 사랑도, 소나기에 흠뻑 젖어 어깨 맞대고 추스리던 사랑도 가을 문턱을 넘으면 갈대처럼 바람에 흔들린다. 벗은 몸을 마주하고 모래사장에 수없는 발자취 남겼던 해변의 사랑도 썰물에 밀려 지워진다. 사랑은 사랑한 자의 고통이며 아픔이고, 애증이고 배반이며, 숙명이고 비극이다. 비록 지옥 불 속에 뛰어든다 할지라도 돌이킬 수 없는 열정이고 죽음을 비겨가는 영원한 약속이다.

“나는 당신과 함께 가 아니라면 천국이라도 가지 않을 거야.” 히스클리프에게 캐서린이 고백한다. 탐스러운 갈색 머리에 갈색 눈을 가진 언덕 위 대저택 워더링 하이츠의 외동딸 캐서린은 아버지가 거리에 버려진 고아 히스클리프를 데려와 자식처럼 키우며 함께 살게 되면서 사랑에 빠지고 등장인물들은 증오와 배반을 거듭하며 비극과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든다.

한국과 일본에서 ‘폭풍의 언덕’이라고 널리 알려진 장편소설 ‘워더링 하이츠 (Wuthering Heights)’는 에밀리 브론테(1818-1848)가 남긴 유일한 소설이다. 작품의 배경으로 암시되는 영국 요크셔 지방 황량한 들판은 여름에는 싱그러운 초록과 보라색 히스꽃 사이로 산들바람이 불고 평화롭지만 겨울에는 먹구름 속에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황량하고 음울한 곳이다. 그 언덕에 자리한 위더링 하이츠 저택에서 벌어지는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사랑을 중심으로 인간의 생과 사, 자연과 초자연, 현실과 환상, 혼돈과 조화, 사랑과 배신, 그리고 운명을 넘나드는 처절한 사랑의 아픔을 작가는 인간 본성과 실존에 대한 통찰력으로 꿰뚫어본다.

같은 시기에 출간된 언니 샬롯 브론테가 쓴 ‘제인 에어’가 호평을 받고 작가로서 성공을 거둔데 비해 발표 당시 비평가들은 폭풍의 언덕을 거칠고 악마성까지 띤 인간의 애증을 강렬한 필치로 묘사한 비윤리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전 생애와 영혼을 바친 단 한 권의 소설이 빛도 보지 못한 아픔과 절망을 안고 에밀리 브론테는 그 다음 해 서른 살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20세기 들어서 ‘달과 6펜스’로 유명한 서머싯 모음이 ‘폭풍의 언덕’을 ‘세계 10대 소설’이라고 극찬하면서 세익스피어의 ‘리어왕’, 멜빌의 ‘모비딕’과 함께 영문학의 3대 비극이자, 가장 아름다운 작품 중 하나로 꼽히게 된다. 탄탄한 서사력과 구성, 시적이고 가슴 적시는 문체, 시대를 넘나드는 이야기 전개와 개성 있는 등장인물을 골고루 갖춰 불멸의 고전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사랑은 거부할 수 없는 목숨 건 몸짓이다. 목숨 걸지 않고 되는 일은 없다. 사랑도 이별도, 이별 뒤에 오는 가을 하늘에 뒹구는 마른 잎새도, 목숨 붙어있는 동안, 살아있는 동안 사랑하고 배반하고, 눈물 흘리고 미워하고 그리고 다시 껴안는다.

“머리 속에 계속 남아 생각을 변화시키는 꿈이 있어. 그 꿈들은 마치 물에 포도주를 섞듯 내 안으로 샅샅이 스며들어 내 마음을 바꿔 놓지. (중략) 내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는 (중략) 그가 나보다도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든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은 똑같아.” 캐서린의 고백이다.

폭풍이 몰아치는 생의 언덕 위에 그대와 내가 서 있더라도, 설령 그대 내 곁에 없다 할지라도, 사랑이 내 허리 굳게 잡고 있는 한 쓰러지지 않고 길을 가리라. 영혼과 영혼이 만나 하나 되는 사랑 앞에 죽음인들 이별을 말할 수 있으리. (Q7 Fine Art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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