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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바람의 뿌리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엔 걷기가 어렵습니다. 주위의 풍경을 편안히 바라볼 수도 없고, 음악을 들으며 걷는데 방해가 됩니다.

그런데 바람은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거나 방향을 정하지 않습니다. 기압의 변화에 따라 달라집니다. 고기압은 안정적이고 맑은 날씨를, 저기압은 불안정하고 흐린 날씨를 가져옵니다. 저기압 지역은 상대적으로 주변보다 공기를 누르는 압력이 약하다는 말인데, 이때 외부에서 공기가 저기압의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합니다. 이때는 바람이 강하고 세게 붑니다. 공기가 상승하면서 비를 동반한 강풍이 불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자주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오늘은 바람이 없네. 바람이 잔잔하네. 혹은 바람이 미친듯이 부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현상은 바람 스스로 결정해서 나온 결과가 아닙니다. 자세히 관찰하면 모든 자연현상은 상대적이라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태풍이나 허리케인의 발발도 깊은 저기압의 기압골로 인해 나타납니다. 저기압과 고기압의 경계에서 바람은 미친듯이 불어옵니다. 그 공기 압력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그리고 심할 때는 집의 지붕을 송두리째 하늘로 날려버리기도 하고, 높은 빌딩의 벽에 균형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바다에 광풍을 동반해서 집채만한 파도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추운 날씨와 동반하면 살을 에이고 뼈까지 서늘케 합니다. 목도리를 목에 칭칭 감고도, 손에 털장갑을 껴도 전신을 떨게합니다.

자연의 현상이 이토록 상대적이듯, 자세히 보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상대적이란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무골호인이란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없을 무, 뼈 골, 착할 호, 사람 인 자를 써서 뼈 없이 착한 사람을 지칭해서 말합니다. 뼈는 딱딱하고 날카로움을 의미하기 때문에 뼈가 없다면 순하고 부드럽다는 뜻이 됩니다. 순하고 착해서 모든 사람에게 잘 대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요즘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인물입니다. 모두가 상대적 입니다. 내게 잘하면 좋은 사람이 되고, 내게 불편하면 나쁜 사람이 됩니다.



사람의 인격도 마찬가집니다. 지탱하고 유지되었던 관계의경계가 무너지면 인격은 순간 사라집니다. 그 안에 불신과 원망과 미움이 싹트게 됩니다. 바람도 경계가 무너지면 성난 광풍이 되듯이 무장한 기마병이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듯이, 가파른 성벽 위를 기어오르는 성난 군대가 됩니다. 우리는 사람의 관계에서도 종종 이와 같은 모습을 봅니다. 무골호인은 이 시대엔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람들도 이해의 경계에서 바람의 뿌리같이 변화 무쌍한 저기압의 기압골로 변해집니다. 그 바람의 뿌리가 오늘 불어옵니다. (시카고 문인회장)

바람의 뿌리

바람이 분다
뼈속까지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온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그 마음 깊은 곳
경계에 서 있는 널 흔들며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이 분다
호수에 바람이 빠진다
머무르고 싶었던 그대 가슴
바람이 불어온다
소리 내 우는 바람은
뿌리가 뽑혀 마음 조린다
직립 할 수 없는 바람은
허공을 향해 소리치고
바닥을 뒹굴며 설 곳을 찿는다

바람이 분다
뿌리채 바람이 분다
머리카락도 풀처럼 눕고
억새도 바람처럼 휜다
경계를 넘은 바람은
가파른 성벽처럼 불어온다
용맹한 군대처럼 빠르게 온다
바람의 뿌리가 불어온다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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