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

Clear
81.8°

2018.09.18(TUE)

Follow Us

관광버스

[텍사스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10/07 13:20

허선영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대상 수상자

영어는 짧지만 그래도 용기내어 빠지지 않고 꼭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아이들 학교 발런티어일이다. 아이들이 어릴때는 소소하게 도서관 봉사부터 할로윈 파티, 견학, 발렌타인데이 파티, 필드데이, 인터네셔날 페스티발, 쫑파티 등등 눈 딱감고 모른체하면 모를까 하려고 하면 은근 많기도 하다.
큰아이가 엘리먼트리를 졸업하고 미들 스쿨에 들어가면서 학부모 발런티어를 졸업했다고 생각했는데, 8학년 봄쯤,, 종이 한 장을 들고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왔다.
‘Six Flags Field Trip Volunteer' 신청서였다.
신청서를 의아하게 보고 있는 나를 향해 간곡하게 애원하던 큰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발런티어하는 부모가 부족해서, 엄마가 안 해주면 자기와 친구들은 선생님과 같이 다녀야 한다고, 엄마가 꼭 해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시대가 흘러도 아이들의 사고는 변함이 없다는 것에 피식 웃음이 돌았다.

화장실이 딸린 관광버스를 타고 3시간 거리의 센안토니오로 출발했다.
아이들은(덩치들은 어른만큼 커버렸지만 내 눈에는 아직 아이들이다.) 친한 친구들끼리 앉아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피곤할텐데 눈좀 붙이지, 뒤돌아서 저렇게 오래 앉으면 허리 아플텐데,,, 라고 걱정하는 내 눈빛을 읽은 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래, 난 전형적인 꼰대가 아니라 쿨한 엄마다!’
라고 최면을 걸며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창밖을 보았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익숙한 상가의 간판들이 차창을 스쳤다. 창밖의 풍경들이 지겨울 때쯤에도 들뜬 아이들의 조잘거리는 소리는 여전했다. 그리고 지치지 않는 신선한 에너지들은 내 여고시절의 수학여행을 떠올리게 했다.

수학여행은 교실에만 처박혀 책만 보던 청소년시절에 나름의 일탈을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물론 기회라고 생각하는 무리들과 교과 과정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는 무리들이 나뉠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몇 개월 전부터 일탈을 준비하는 무리에서 선봉장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하기 그지없는 대본을 써서 친구들을 섭외하고 짬짬히 연습을 해서 준비한 간단한 콩트가 히트를 쳐서 내 이름 석 자를 충분히 알렸다. 그리고 선생님들과 범생이들이 모두들 잠든 오밤중이 되었다. 이런 날은 또 잠을 자지 않는 것이 예의가 아니던가! 내가 비장의 무기로 준비한 화투로 삼삼오오 모여 민화투를 쳤다. 할머니한테 어깨너머로 배운 가닥이 있지... 민화투로 승승장구하며 과자뿌스러기를 쌓고 있을때 나 보다 훨씬 쎈? 친구들이 미리 준비한 맥주캔을 슬쩍 옆구리에 찔러 주었다. 오마이갓! 맥주를 가지고 올 생각을 한것도 용하지만 사전 검열에서 걸리지 않은 것도 참으로 용했다. 필통과 보온밥통과 생리대 한 봉지는 맥주캔을 숨기는 최적의 장소였던 것이었다. 그들의 우수한 두뇌에 대한 감탄보다 이 귀한걸 나에게 주었다는 벅찬 감동에 손이 떨렸다. 맥주캔 따개에 검지를 걸던 그 느낌과 ‘치익, 딱~!’ 하고 청명하게 들리던 그 소리를 평생 잊지 못한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맥주를 들이키며 평생 처음 알코올이 주는 떨림을 맛봤다. 밤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들이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은 시골 밤하늘이라서 인지 알코올 때문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정신이 알딸딸할때쯤 민화투에서 고스톱으로 판이 바뀌었다. 처음 접한 고스톱은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민화투로 일궈놓은 나의 간식들을 지켜내지 못하고 고스톱 몇 판으로 알거지가 되었으니까......
사실 고2때 수학여행을 어디로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내 머릿속 한 블록을 차지하고 있는 기억에는 ‘콩트, 맥주, 고스톱’ 이 세 가지만 있을 뿐이다.

창밖을 보며 피식피식 웃으며 추억을 삼키고 있을때 드디어 관광버스는 목적지 ‘Six Flags'에 도착했다. 모자를 고쳐쓰고 벗어던진 운동화를 찾아 신고 있는 딸과 친구들을 보면서 똑단발 미라와 유독 짧은 커트머리에 앞머리는 집게삔으로 마무리를 했던 지영이와 왕곱슬에 실삔을 다다닥 꽂아서 차분하게 만들었던 나의 십대가 생각나서 눈물이 핑 돌았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가 쓴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 문장이 청춘을 대변하는 명제가 된듯해서 슬프다. 나는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아프니까 청춘인 것이 아니라 싱그러우니까 청춘이다.
관광버스만 타면 난 내 십대의 싱그러움이 그립다.

오늘의 핫이슈

Branded Content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HelloK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