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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넘쳐나는 미국 속에서 희망의 끈 놓지않는 시민들

박세용 기자
박세용 기자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03/23 07:48

[워싱턴포스트 기획연재] 미국의 오늘을 찾아서 (2)

뉴햄프셔 예비경선을 앞둔 버니 샌더스 의원 선거 사무실. 저스틴 타욱(30)이 트럼프 후보의 유세 소식을 시청하고 있다. 작은 은행의 IT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타욱은 버니 샌더스 후보의 월스트리트에 대한 개혁의지와 ‘빅 머니’ 앞에 무기력한 워싱턴 정가를 변혁시키자는 주장에 깊은 감명을 받아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그의 아버지는 25년간 지역 육류포장공장에서 일했다. 공장은 경제위기 속에 큰 회사에 팔렸다가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일자리를 잃고서 정부의 실직자 직업 교육을 이수한 타욱의 아버지는, 수중모터를 우물에 설치해 주는 작은 회사에 취업했다. 작은 가게에서 일하니 생각도 작아졌다.

타욱은 아버지가 뉴햄프셔의 소도시 두버크의 노동자 계급이 겪고 있는 여러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다니던 육류가공 공장이 문을 닫았을 때, 타욱은 이것이 이익만을 바라보고 모든 결정을 내리는 기업들의 횡포 때문이라고 직시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기같은 소시민의 삶도 크게 보면 월스트리트 거대 기업들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저 불법이민자들과 잘못된 무역협정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것이라고 한탄했다.

그런 상황속에 저스틴 타욱은 샌더스 의원과도 같은 ‘진보적인 믿음’을 품기 시작했다. 그 믿음은 어떤 사명감을 갖게 했고 결국 정치적인 행동에 까지 이르게 했다. 그 무렵부터 그는 카운티 의회부터 학교 교육위원 선출까지 가능한 모든 투표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버니 샌더스를 위해 봉사하기로 마음 먹었다.

20대인 니콜라스 허큰베리와 앨리슨 심슨은 열렬한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지지자다. 그들과 함께 한 시간동안 우리는 클린턴 선거 캠프가 보여주는 장밋빛 약속과 위험성을 동시에 접할 수 있었다. 그들의 조직은 정확하고 잘 정비돼 있다. 하지만 무언가가 빠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을 위해 봉사했던 그들은 이번 선거에 클린턴을 돕고자 마음먹었다. 클린턴 후보야 말로 오바마 대통령이 이룩한 각종 정책들을 제대로 이어받아 발전시킬 적임자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허큰베리는 “끼워 맞추기식의 선택이지만 클린턴 후보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가장 적합하다”고 말했다.

앨리슨 심슨 양의 클린턴 지지이유는 좀 더 명확하다. 그의 어머니는 10대시절 결혼해 여섯명의 아이들을 낳고 키웠다. 심슨은 “여성들에게 낙태와 같은 선택의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며 클린턴 후보의 여성정책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들의 권리를 깨닫고 여성인권운동가로 변신한 어머니를 동네 주민들이 “낙태주의자”라며 밀치고 욕하던 어린시절의 기억을 지울 수 없다. “그 기억은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박혀있다”고 심슨 양은 강조했다.

심슨에게, 허큰베리에게 가장 중요한 특징은 ‘공동체 의식’이었다. “배경이 어떻든, 누구든지 상관없이 힐러리 클린턴을 돕기 위해 여기에 모인 우리들은 단단히 뭉치고 있어요.”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지지자들은, 클린턴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가장 가능성 높은 후보라는 이미지와 정책, 여성이라는 상
징성에 기대는 비슷한 이유를 가진 수 많은 이들이 뭉치고 있는 것이다.

뉴햄프셔 예비경선을 하루 앞둔 날, 허큰베리씨의 가정에 두 남자가 방문했다. 이들은 터키 이민자들로 무슬림을 믿고 있는 클린턴 지지자들이다. 이스마일 펄사트는 대리석 주방공사를 전문으로 하는 성공한 사업가다.

그는 자신을 터키에서 프로 복서였다고 소개했다. 미국 땅에서 권투선수로 성공하기 위해서 이민왔다는 그에게 미국은 어떤 곳일까?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곳이죠.” 시민권을 따려면 아직 2년이 남았다는 펄사트 씨는 “종교와 인종, 문화적 배경 상관없이 하고 싶은 말을 떳떳하고 진솔하게 할 수 있는 참된 민주주의 국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때 공화당을 지지했던 펄사트 씨는 현재 공화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트럼프 후보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그는 “트럼프의 이민자 공격에 상처를 받았다. 그가 주장하는 세상은 민주주의 국가 미국과는 거리가 멀다”고 단호히 말했다.

트럼프의 돌풍은 예상외의 예기치 못한 결과물들을 낳고 있다. 펄사트씨와 같은 조용한 이민자들이 정치 활동가로 변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예다. 이 날, 허큰베리 양은 펄사트와 그의 친구에게 힐러리 클린턴을 위한 선거운동에 대한 방법들을 교육했다. 그들은 위스컨신으로 돌아가 앞으로 클린턴 후보를 위해 동네 가정들을 방문하며 유세를 펼칠 예정이다.

에드워드 메스트 목사(45)는 아이오와 코커스 전날 그의 작은 교회에 “오직 하느님 만이 위대한 미국을 재창조 하실 수 있다”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그는 공립학교에서 성경이 사라지고 히피들이 자녀들에게 무신론을 가르치던 수십년 전 부터 미국의 정신을 되찾기 위한 전쟁은 시작됐다고 믿고 있다. 최고의 지성이라는 대법원 판사들이 낙태를 지지하고 동성간의 결혼을 합법화 시키는 현실을 메스트 목사는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여름,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이 나왔을 때, 전국 복음주의단체들은 신도들에게 ‘투표에 참가해 정치적 힘을 보여주자’는 메시지를 대대적으로 전달했다. 이에 편승해 텍사스 연방상원의원 테드 크루즈는 모든 목사들에 대한 지지 호소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메스트 목사는 이번 선거에서 크루즈 상원의원을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메스트 목사에 의하면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경제도, 인종문제도 아니다. 바로 ‘영혼의 문제’다. 그는 “기독교 정신이 죽어서 모든 문제가 야기됐다. 하느님의 목소리가 모두에게 전달된다면 갈등은 사라지고 해결방법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오와 코커스가 개최된 아침. 매스트 목사는 다섯명의 신도들과 커피를 마시며 정치를 주제로 이야기 했다. IT기술자 빅터 모워리(43)는 “동성결혼 합법화는 자칭 진보적인 대법원 판사들 탓”이라고 말한다. 또한 미디어가 평범한 미국인들이 아닌 일부의 주장을 대다수의 바람인 양 왜곡한다고 주장했다. 모워리씨는 “미국을 바꿀 필요는 없다. 단지 옛 모습으로 되돌리면 되는 것”이라고 담담히 말한다. 그는 “가끔식 우리가 대재앙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그날 열린 뉴햄프셔 공화당 전당대회에는 4년전과 달리 수많은 당원들이 모습을 보였다. 몬티 알렉산더는 누구를 지지해야 할 지 자신이 없었다. 루비오, 크루즈가 과연 힐러리 클린턴을 이길 수 있을까? 트럼프는 과연 보수주의자로 공화당을 이끌 수 있을까? 하는 상념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15살 난 아들에게 누구에게 투표할 지 물었다. “트럼프요” 아들의속시원한 대답에 따라 알렉산더씨는 투표용지에 T-R-U-M-P라고 적었다.

같은 시각, 민주당 전당대회. 저스틴 타욱씨는 한 손에 맥주병을 들고 투표중계를 시청하고 있었다. 샌더스 후보가 근소한 차로 앞서는 중이었다. 니콜라스 허큰베리와 앨리슨 심슨 양도 멀지 않은 곳에서 초초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스마트폰으로 다른 지지자들과 SNS로 상황을 이야기하며 쉴 새없이 바빴다.

분노가 넘쳐나는 선거의 계절에도 기득권세력이라고 불리는 자들의 이름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생, 자유, 이상향을 찾는 여정 따위로 포장된 정치인들의 대망에, 분노로 가득한 미국인들은 아직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채 과거의 영광과 공평한 미래를 한껏 꿈꾸며 나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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