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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석-윤시내 부부의 북유럽 자유여행-④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10/06 15:02

순수함과 자유분방한 현대가 공존하는 곳
안데르센 동화의 산실 코펜하겐
초라한 인어공주상에 관광객 몰려

아름다운 뉘하운 운하

아름다운 뉘하운 운하

노르웨이의 항구 도시 버겐 부둣가에서 100년 가까이 장사하는 유명한 어묵 가게를 찾아 아침으로 어묵을 사 먹고(한국 꼬치 어묵에 비해 감칠맛이 덜하다), 오후 1시 반 출발해 다음 날 아침 7시 덴마크 북부의 항구도시 허트샬(Hirtshals)에 도착하는 페리에 오른다. 일찌감치 탄다고 했는데도 배 안에는 벌써 승객들이 유리창 옆 전망 좋은 자리는 다 차지하고, 어떤 승객은 잠자리가 될 만한 긴 소파에 짐을 올려놓고 넉넉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는 선박회사와 몇 번씩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가까스로 선실을 예약한 뒤라(선임 173달러+선실 242달러 추가) 마음이 느긋하지만, 만약 우리가 좀 더 젊고 경비를 절약해야 한다면 하룻밤쯤은 소파에 누워 밤을 지낼 수도 있을 만하다.

선실에 있으면 배 엔진 소리도 들리지 않고 배의 움직임도 감지할 수 없다. 침대는 딱 한사람 누우면 될 정도로 좁지만 탄탄하고, 순백의 시트는 비단처럼 매끄럽고 상큼하게 피부에 닿는다. 다만 유리창이 없어 바다가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다음에 또 페리를 탈 기회가 있으면 저녁 뷔페(1인당 57달러)를 건너뛰고 거기서 아낀 돈으로 유리창 있는 선실을 쓰자고 하며, 뷔페 그거 두 번 먹을 거 아니라고, 본전 생각 간절하다고 하며 둘이서 웃는다.

다음 날 아침 7시 반 배는 허트샬에 도착한다. 대기하는 버스가 있어 무조건 올라타고 보니 기차역까지 가는데 표를 사라고 한다. (1인당 6.40달러). 허트샬 기차역은 역사(驛舍)도 없고 허허벌판에 표지판만 덩그러니 서 있어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은 바람을 피해 목을 움츠리고 서 있다. 낯선 도시의 새벽, 먼지가 잔뜩 묻고 더러워진 가방을 보며 이제 여행의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생각한다.

코펜하겐까지 가는 기차에서 내가 우려하던 일이 드디어 벌어졌다. 여행 떠나기 전 덴마크 철도 웹사이트를 통해 좌석을 예약하려고 몇 번 시도했는데 예약이 필요 없다는 정보만 나와서 계속 꺼림칙했다. 기차에 타고 한 시간쯤 갔을 때 방금 승차한 젊은 여자가 우리 옆에 와서 여기가 자기 자리라고 하며 표를 보여준다. 좀 창피했지만 다른 자리로 옮겨 앉았다.

한참 지나서, 다음 역에서는 5분간 정차한다기에 준비하고 있다가 얼른 기차에서 내려 차장을 찾아 우리 레일 유럽 패스를 보여주며 자리를 지정해달라고 하니 차장이 자기는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역 바깥 시내로 나가서 예약하고 오라는 것이다. 시내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이 기차를 보내면 다음 기차가 언제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예약을 하느냐고 했더니, 그건 자기가 알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너무 냉정하다 싶어 슬며시 오기가 났다. 예약 안 했다고 벌금 내라면 내지!

다시 좌석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얼마후 아까 그 차장이 차표 조사를 나왔다. 우리 표를 내보였더니, 표 뒤에 오늘 날짜와 목적지를 코펜하겐으로 쓰면 자기가 확인 사인을 해주겠다고 아주 딴 사람처럼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벌금이 얼마나 될까 걱정하던 나는 마음이 가벼워져서 기차 안을 구경 다닌다. 덴마크 사람은 점심도 먹지 않는지 식당차는 없고, 가족용 기차 칸은 반쯤을 유리로 막아 어린이 놀이방으로 만들어서 바닥에 푹신한 고무를 깔고 장난감과 동화책들을 준비해두었다. 북구 사람이 생활의 우위(優位)를 어린이 보호와 가족 편의를 제공하는데 둔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코펜하겐 기차역에서 밖으로 나오니 티볼리 가든 정문이 바로 길 건너편 앞에 있다. 마침 호텔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짐을 갖다 놓고 공원에 들어간다. (입장료 약 12달러) 도심에 있는 것이니만치 공간을 잘 활용하여 여러 가지 놀이기구와 아담하고 우아한 정원과 고급스러운 식당, 카페들이 촘촘히 자리 잡고 있다. 170여 년 전, “국민이 여가를 즐기며 살 수 있으면 정치는 생각지 않는다”고 왕에게 아뢰어 허락을 받고 지은 것이라는 티볼리 가든은 월트 디즈니가 미국에 디즈니 공원을 만들 때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코펜하겐의 관광 1호, ‘인어공주’ 상을 찾아 시내버스를 탄다. 덴마크 상징처럼 세계에 알려져서 크게 기대를 하고 보러 갔더니 아주 형편없이 조그맣고 초라하더라는 얘기를 들은 터라 실제는 어떤지 궁금했다. 차장에게 인어공주 상 앞에서 내려달라고 했더니, 중국사람들이 수십 명 떼 지어 걸어가는 것을 따라가면 된다고 웃지도 않고 대답한다. 그 대답이 과장이 아님을 곧 알게 된다. 물가의 작은 바위에 올라앉자 고즈넉이 바다를 바라보고 앉은 인어공주 상 근처에는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위험할 정도로 많아서 사고라도 나면 어찌할까 싶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다는 것은 좋기만 한 일은 아닌가 보다. 인어공주상은 그동안 머리가 잘리고 팔이 부러지고 페인트를 온몸에 뒤집어쓰는 수난을 여러 번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도 조용한 기다림과 이루어지지 않을 꿈에 대한 서러움과 체념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주위의 소음과 복잡함을 초월하고 있다.

코펜하겐 대중교통으로 제일 멋진 것은 수상 버스일 것이다. 시내 3일 교통패스에 포함되는데 운하의 양안(兩岸)을 왔다 갔다 하며 시원한 바람과 따스한 햇볕 속에서 오페라 하우스를 비롯한 주변의 경치를 편안하게 앉아서 감상할 수 있고, 아픈 다리도 쉴 수 있어 일석이조다. 우리는 인어공주상 근처에서 타고 한 10분 지나 크리스티아니아 프리타운 가까운 정거장에서 내린다. 무료도보안내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이곳은 코펜하겐과는 별도의 행정지역으로 마리화나를 비롯해 각종 마약이 공식적으로 판매되는 곳이어서 외부의 안내가 허락되지 않는 곳이라는 얘기에 호기심이 동했기 때문이다.

티볼리 공원 정문

티볼리 공원 정문

크리스티아니아 자체에서 주중 오후 3시 반에 유료 안내가 있지만, 시간을 맞추지 못해서 할 수 없이 둘이서 어슬렁거린다. 유진선 지음, ‘북유럽 셀프트레블’ 여행안내서에 의하면, 1970년대 이후 “히피들과 사회 문제 층이 정착하고 공동체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자유 지역으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거리는 좁고 약간 무질서하고 낙서인지 작품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그림들이 벽을 장식하고, 카페에서는 음식 냄새가 음악과 함께 흘러나오고, ‘Pusher Street’란 이름이 붙은 거리에는 여러 사람이 각기 조그만 좌판을 놓고 마리화나로 보이는 것들을 판다. 때 묻은 옷에 헝클어진 머리를 한 초로의 남자는 초점 없이 충혈된 눈동자로 우리 곁을 무심히 지나간다. 사진을 찍으려면 반드시 미리 허락을 받고 찍어야 한다는 경고가 붙어있다.

잔디가 덮인 언덕에 의자들이 있어서 우리도 가서 앉는다. 주변에 앉아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거의 삼십 대 미만으로 보이는 남녀들이고, 가까스로 성년이 된 듯한 남학생 대여섯이 킬킬거리며 나무 뒤 으슥한 곳으로 몰려간다. 공동사회의 질서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인 사회의 규범과 그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 각자의 특성과 자유는 여기서 일단 휴전상태일까.

티볼리 공원 근처, ‘와가 마마’라는 음식점 선전에 ‘불고기 김치 덮밥’이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찾아간다. 뚝배기에 담아 따끈하게 나온 불고기는 스테이크를 구워서 도톰도톰하게 썬 것이고 김치는 말만 김치지만 그래도 만리타국에서 따끈한 밥과 불고기와 김치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호호 불어가며 맛있게 먹으며, 7주의 긴 여행이 무사히 끝나가는 것을 고마움과 안도감, 서운함과 아쉬움이 섞인 마음의 눈으로 바라본다. (끝)
인어공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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