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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다시 펜을 잡게 한 숨은 독자

글쓰기가 버겁다고 느끼면서 절필을 생각했습니다. 쓰지 않으면 내가 아파지는 게 싫어서 토해내곤 했습니다. 가끔 궁금했습니다. 과연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일까. 혼자 물어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전혀 없습니다. 궁금증도 사치였습니다. 혼자 내 흥에 겨워 쓰고, 발표하고, 자족하는 우물안 개구리 생활이었습니다.

글쓰기를 시작할 때는 꿈이 있었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슬픈 가슴이 내 글을 읽고 따스하게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결코 당신 혼자만의 슬픔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해 기죽어 있을 때 나도 그래요, 라는 솔직한 상황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함께 공유하는 아픔이니 곧 헤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내가 겪으며 힘들었던 문제들을 가감 없이 보여 주곤 했습니다. 안 그런 척 도도하게 숨겨야 할 치부까지도 다 벗겨 놓았습니다. 때론, 너무 주책 없이 벗었구나, 화들짝 놀라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지쳤던 겁니다. 아무 소용 없는 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부끄럼이 밀렸던 겁니다.

신문사 오피니언 지면을 활용하던 기회를 자진해서 버렸습니다. 아무도 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글쓰기를 중단했기 때문입니다. 게을러집니다. 글감은 쌓여가는데 꺼내지를 않으니 숨이 막히는 현상입니다. 어느 순간엔 호흡이 막힙니다. 이런 상태가 계속 된다면, 숨이 멈출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나를 노려봅니다.



남편의 고교 선후배가 함께하는 산악회 모임에 따라 나섰습니다. 산행을 할 때는 흔쾌히 동행하지 않던 모임이지만, 송년회를 회원집에서 한다니 가고 싶었습니다. 남자 학교 동문들의 산악회라서 내 걷기 실력이 모자란 터라 참석은 자주 못했지만 먹고 노는 모임이라 편하게 갔습니다. 남편보다 12년 아랫기의 회원이 큰 맘 먹고 집을 오픈했던 겁니다.

서열로 따지면 남편이 세번째 꼰대지만, 마나님들 나이로 따져 내가 두 번째, 그것도 단 한 살 차이였습니다. 조심스러워서 긴장이 됐습니다.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 본 경험이 없는 때문입니다. 낯익은 분들이 몇 눈에 띄지만 대부분이 새로운 얼굴에 한눈에도 알 수 있는 에너지 넘치는 세대입니다.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젊은피가 기를 주는 듯해서 기운이 솟았습니다.

"어머, 만나고 싶었어요. 지난 산행에 오셨다면서요? 제가 안가서 뵙지 못했는데…글 쓰신다구…." "아참, 저도 잘 읽고 있어요. 항상 기다리게 돼요. 요즘은 한참 못 읽었어요."

"글이 어땠어요? 무슨 느낌이셨어요?" "우선 글이 편해요. 아 그렇지. 정말 그런데. 그렇겠구나 거부감 없이 공감이 가요."

에? 반가워라. 이럴수가. 읽는 사람 없을 거라고 포기했던 걸 처음으로 후회했습니다. 아직도 내글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독자 몇 분을 만난 경사. 이건 기적입니다.


노기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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