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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38년전 그때 그 여인

오월이다. 해마다 이맘 때면 목련꽃 피어나던 광주 금남로가 떠오른다. 학생들을 살려달라고 어둠을 뚫고 들려오던 절절한 목소리도 함께 묻어온다.

그랬다. 80년 5월 어느 새벽, 확성기를 통해 밤하늘에 울려퍼지는 한 여인의 다급하고 애절한 목소리가 잠결에 들려왔다. "시민여러분, 학생들이 죽어갑니다. 살려주십시오. 잠깨어 일어나, 도청으로 나와주십시오."

잠시 후, 헬리곱터가 선무방송을 시작했다. "여러분 밖으로 나오면 절대 안 됩니다. 지금 폭도들이 날뛰고 있습니다." 그리고 삐라를 뿌렸다. 가만히 집에 있으라는 내용이었다.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탕, 탕탕. 도청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탕, 소리 하나에 한 목숨이.... 총성을 뚫고 들려오는 여인의 절박한 목소리가 가슴을 후벼 팠다. 동명동 반지하방에서 동생들과 자취를 하던 나는 벌떡 일어나 마당에 나와 가만히 담 넘어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깜깜한 거리에 공포와 죽음의 그림자만 가득했다.



어느새 38년이 지났다. 그 새벽 울부짖던 목소리는 메아리 없이 사라지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총소리 따라 별이 되었다. 오월이 지나자 신문은 말했다. 사망 154명, 행불 64명, 중상93명. 사람들이 수근거렸다. "오~메, 참말로 거시기 하네 잉".

그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발포명령자는 없었다. 그러나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 SBS는 지난 5월14일자 방송에서 "전두환, 최종진압 작전 결정" 이라며 미국의 비밀 문건을 인용 보도했다.

어떤 풍경이나 기억은 세월이 가도 잊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그 새벽 여인의 목소리가 그랬다. 주인공이 궁금했다. 그런데 최근 우연히 그 분을 만났다. 지난 3월, 한국 방문 중 강연을 위해 광주를 방문했다. 행사를 주관하는 김회장과 얘기를 나누던 중 그날 새벽이 화제에 올랐다. 지금 안동에서 식당을 하며 지낸다고 했다. 그렇게 통화를 하게 되었고, 결국 그 분이 광주까지 오게 되어 만나게 되었다.

차명숙씨다. 5.18당시 가두방송을 했던 사람이 두 명인데, 자신은 그 중 하나라고 했다. 영락없는 시골 아줌마다. 저 여인의 어디에 죽음을 무릅쓰고 시내를 누비며 방송할 만큼의 강단이 숨어있을까 싶을 만큼 소박해 보였다. 아저씨 아줌마 학생을 포함한 보통사람들이 국가폭력에 맞서 일어났던 항쟁이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감당하기 힘들었던, 혼자서 감내해야만 했던 개인사를 전해 들었다. 그녀는 당시 양재학원생으로 열아홉 살이었다. 계엄군에 의해 죽어가는 시민들을 보고 자진해 가두방송을 시작했고, 병원에서 부상자를 돌보던 중 505보안대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살이 터지고 피가 흘러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을 만큼 고문을 당했단다. 가슴이 아팠다. 피멍 든 세월을 견뎌 온 분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했다. 이런 분들의 희생이 있어 역사가 발전하고, 오늘에 이르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오월이다. 목련꽃 흐드러진 이 계절. 꽃잎처럼 스러져간 영령을 위해 기도한다.


정찬열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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