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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시인이 시를 읽다

시를 쓰는 나는 매일 시를 읽는다. 예전에 읽었더라도 다시 읽으면 맛이 다르고, 읽고 난 후에 갖게 되는 느낌도 다르다.

어제는 박용래 시인의 가을 시편을 읽었다. 그는 시 '가을의 노래'에서 "흐느끼는 풀벌레 소리……/ 쓸쓸한 마음을 몰고 간다/(……)/ 허술한/ 허술한/ 풀벌레와 그림자와 가을밤."이라고 썼다. 온전히 다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허술한/ 풀벌레와 그림자와 가을밤."이라는 시구에서 가을의 서정을 물씬 느낄 수 있었는데, 이 시구는 시들어 허전해지는 수풀과 점차 쇠락해가는 생명의 기운을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시를 읽으면서 시를 통해 마음의 상태를 점검하고 생활을 돌아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내가 '슴슴하다'라는 말을 알게 된 것도 시를 통해서였다. 평북 정주가 고향인 시인 백석은 '국수'라는 시에서 국수의 맛을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하다고 평하면서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썼다. 맛이 자극적이지 않고 조금은 싱겁다는 의미다.

김종길 시인은 시 '설날 아침에'를 통해 새해를 맞는 각오와 삶의 자세를 노래한 적이 있다. 시인은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고 썼다.



나는 내 마음의 상태를 훨씬 밝고 유쾌한 상태로 만드는 일에 시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정지용 시인이 바람을 노래한 시구는 마음을 한층 높은 곳에 올려놓는다. 시인은 바람이 장미꽃의 향기를 실어오고 바람이 별과 바다를 씻긴다면서, "바람은 음악의 호수/ 바람은 좋은 알리움!"이라고 표현했다. 바람의 움직임을 향기와 소식의 이동으로 본 이런 구절을 읽으면 어느새 마음은 바람처럼 가볍고 환한 곳으로 옮겨간다.

박목월 시인의 시 '하선(夏蟬)'을 읽어보자. "올 여름에는 매미 소리만 들었다./ 한 편의 시(詩)도 안 쓰고/ 종일 매미 소리만 듣는 것으로/ 마음이 흡족했다."라고 썼다. 시인은 여름날의 매미 소리를 들으며 오랜만에 갖게 된 느긋하고 편안한 심사를 "무료한 안정(安定)"이라고 불렀다.

세상의 일에 자주 지치게 되는 게 삶의 형편이지만, 시인은 일상에서 작은 기쁨과 충만감을 찾으려고 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시인의 애씀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박목월은 우리들이 내면의 빛으로 산다고 말했다. "마음의 눈을 뜨게하는/ 내면의 빛"으로 산다고 말했다. 내면에 빛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유쾌한 상상은 아닐 것이다. 내면의 빛을 발견하게 하는 것들을 스스로 찾아보려는 노력은 그래서 중요하다.

문학, 음악과 같은 예술을 통해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속이라면 분명 빛이 있을 것이다. 종교적인 말씀도 내면의 빛을 찾아줄 것이다. 가을이 성큼성큼 다가올수록, 날씨가 쌀쌀해질수록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빛을 스스로 찾아보고, 또 그 빛이 꺼지지 않도록 애쓸 일이다.


문태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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