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생활 속에서] 바람이 '치매 엄마'를 깨우다

거센 바람소리에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일어나 거실의 큰 창문으로 앞마당을 내다보았다. 바람은 나무와 꽃들을 세찬 그네에 태우고 야자수 잎의 커다란 한쪽 날개를 지붕에 걸치게 했다. 문득 3주 전에 다녀온 한국의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주중 6일을 치매노인 보호센터에 다니신다. 벌써 7년이나 된다. 10여 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우울증이 왔다. 성격이 거칠어지고 도우미 아줌마를 사사건건 의심하셨다. 하지만 아무도 치매를 의심하지 않았다. 원래 까다로운 성격이기 때문에 그러신 줄 알았다. 의사인 큰동생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8년 전에 오렌지카운티에 살던 작은 동생이 영주권을 포기할 각오로 가족 중에서 먼저 귀국했다. 서울의 큰 올케가 책임감을 갖지 않기 때문에 큰동생이 모시는 것은 불가능했었다.

엄마의 치매는 매년 조금씩 나빠진다. 나는 가을마다 한국에 가서 세 번의 주말을 엄마와 함께한다. 토요일 오후 4시 반에 보호센터 차를 타고 귀가하는 엄마를 모시고, 택시를 타고 분당서 강남의 숙소로 온다. 방문 때마다 빌라를 숙소로 얻기 때문에 호텔보다 엄마와 편하게 지낸다.

내가 "엄마"라고 부르면 엄마는 "엄마?"라고 반문하신다. "나 엄마 딸 00이잖아"라고 말하면 "00이야?"하시며 잘 안다는 듯 대답하신다. 우리는 토요일 주로 숙소에서 지내지만 일요일은 나름 세운 계획대로 움직인다. 제일 먼저 목욕을 시키고 아침을 드리고 이를 닦도록 한다. 그리고 잠시 누워서 쉬고는 동네로 산책 나간다. 동네라야 강남의 골목길을 말하는 것이다. 강남도 주말은 회사들이 쉬어서 골목은 좀 한가하다.



골목길에는 카페, 식당, 빵집, 스타벅스, 문방구, 철물점, 꽃집, 세탁소, 편의점, 미장원 등등 없는 것이 없다. 몇 년 전에는 엄마와 이 가게들을 빠짐없이 순시했다. 쉬려면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식사 때가 되면 다양한 종류의 식당에 들어갔다. 가장 크게 반응하시는 꽃집 앞에서는 특히 오래 머물렀다.

엄마는 허리가 아파서 잘 걷지 못하신다. 그래서 워커를 보행기처럼 밀고 다니신다. 올해는 20분 정도 지나면 더 이상 걸을 수 없다고 하셨다. 이 20분도 열 걸음, 스무 걸음마다 멈추어야 한다. 워커에 달린 의자에 초현실적인 표정으로 행인들을 구경하며 쉬는 솜씨는 숙련이 되었다.

이제 엄마와 나는 숙소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신다. 마침 바람이 세찬 일요일이었다. 창밖의 가을 나무 윗부분이 크게 흔들렸다. 비까지 가세했다. "엄마, 밖에 비가 와요. 바람이 세요. 침대에 누워서 바라보니까 좋지요?" 엄마는 아무 표정없이 대답하셨다. "바람이 차다!" 창안으로 스며들지 못하는 바람이지만 차가움을 느끼셨나 보다. 순간 엄마의 느낌이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미안해요. 딸과 자주 함께하면 감정을 더 많이 느끼실 텐데…."


정 레지나 / LA 독자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